[세종로 인&아웃]공직사회, 낙지처럼 달라붙어 몸조심

  • 입력 2004년 1월 18일 18시 5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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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점심시간 무렵 서울 세종로 외교통상부청사 2층 로비에선 ‘어색한 만남’이 이뤄질 뻔했다. 이임식을 마친 윤영관(尹永寬) 전 외교부 장관이 로비에서 간부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던 시간에 마침 외교부 간부의 대통령 폄훼발언 사건 조사 책임자인 문재인(文在寅)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이 점심식사를 하러 가려고 엘리베이터에서 내렸기 때문이다. 윤 전 장관 일행을 발견한 문 수석이 빠른 걸음으로 자리를 피해 승용차에 오르는 바람에 불편한 조우는 이뤄지지 않았다. 이날 해프닝은 민정수석실이 참여정부 출범 이후 외교부 청사 6층에 세 들어 살며 ‘불편한 동거’를 계속하는 바람에 빚어진 것이었다. 이 때문에 외교부에선 호랑이(민정수석실)를 불러들여 화(禍)를 입었다는 말까지 흘러나오고 있다. 실제 최근 외교부 주요간부들은 ‘6층’으로 줄줄이 불려가는 곤욕을 치렀다. 북미국장과 장관 보좌관도 외교부와 국가안전보장회의(NSC)의 갈등을 보도한 국민일보 기사 때문에 6층에서 조사를 받았다.》

외교부 안팎에선 “외교부와 민정수석실 사이의 물리적 거리가 가까운 점도 파문확대에 기여했을 것이다”고 말한다. 민정수석실측이 건물 로비나 엘리베이터에서 체감할 수 있는 ‘외교부 정서’가 이번 조사과정에서 알게 모르게 반영되지 않았겠느냐는 추측이다.

아무튼 지난주 말 본보 취재팀이 직접 만나거나 전화로 통화한 외교부 직원들은 이번 파문을 다양한 시각으로 읽고 있었다. 특히 이번 사건이 외교부 직원의 투서에서 발단됐다는 점에서 흉금을 터놓아야 하는 동료까지도 신뢰할 수 없게 된 현실을 불안해했다.

일부는 “대통령이 인사권을 쥔 무서운 존재여서가 아니라, 전 국민이 선출한 유일한 공직자이기 때문에 존중돼야 한다”는 ‘모범답안’을 내놓기도 했지만 대다수 외교관들은 특히 실종된 토론문화를 아쉬워했다.

하루 수십건씩 의견이 올라오던 외교부 내부통신망에는 ‘사건 발생’ 48시간 동안 윤 장관에 대한 글이 1건만 올라왔다. “회식도 삼가자”며 직원들이 퇴근을 서두른 탓에 이임식이 치러진 날 오후 7시15분, 청사 지하주차장은 텅 비어있었다.

금융분야 공직자가 꼽은 올해 공직사회의 키워드가 ‘낙지부동’이라는 이야기를 외교부 직원에게 들려줬다. 복지부동(伏地不動) 차원을 넘어 낙지처럼 빨판을 이용해 ‘핵심’에 착 달라붙어 있겠다는 우스갯소리다. 이 농담을 전해들은 외교부 직원은 “조직이 얼어붙어 빨판을 쓴들 제대로 달라붙어나 있겠느냐”고 쓴웃음을 지었다.

김승련기자 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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