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진의 영화파일]'윈드 토커' 악몽 씻은 '페이첵'

사진제공 CJ엔터테인먼트

‘페이첵’ 우위선 감독

평가가 엇갈리긴 하지만 영화 ‘페이첵’은 우위선(吳宇森) 감독의 자기 고백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눈여겨볼 만한 작품이다. ‘페이첵’이 그의 자전적 영화냐고? 영화 내용은 그와는 완전히 동떨어진 얘기니까 오해 마시길.

우위선 감독 얘기에 앞서 ‘페이첵’에 대해 간단히 요약하면 이렇다.

주인공 마이클 제닝스(벤 애플릭)는 기업으로부터 청탁을 받고 비밀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분해공학자다. 기업들은 그에게 거액의 대가를 지불하지만 대신 프로젝트를 수행한 기간만큼의 기억을 삭제해 버린다. 그런 그에게 일생일대의 기회가 찾아온다. 3년 동안 알컴사에서 비밀 프로젝트를 수행하면 그 대가로 엄청난 금액을 지불하겠다는 것. 그러나 3년이 지난 뒤 제닝스는 거액의 보수(Paycheck)를 받기는커녕 생명을 위협받는다.

필립 K 딕의 SF 원작을 마치 알프레드 히치코크의 ‘너무 많이 안 사나이’ 같은 미스터리 추리극으로 풀어 낸 이 영화를 두고 우위선의 인생과 닮았다고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잘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다. 기억을 잃어버린 남자와 거액의 보수. 이건 바로 할리우드에서 거액의 개런티를 받으며 살아가는 대신 홍콩 시절의 영화적 미학은 잊어버릴 것을 요구받고 있는 우위선 자신의 현재 상황을 얘기하는 듯하다. 돌이켜 보면 1992년 할리우드에 온 이후, 그는 이번 영화에서처럼 줄곧 기억을 잃고 헤매거나 얼굴이 바뀐 채 자신의 진짜 얼굴을 찾아 헤매는 이야기(‘페이스오프’)에서 세공력 있는 연출을 선보였다.

우위선의 방황은 그의 골수팬들을 안타깝게 한다. 80년대 ‘영웅본색’ 시리즈나 ‘첩혈쌍웅’ 등 그가 일궈낸 이른바 홍콩 누아르의 전설을 생각하면 왠지 동정심마저 느껴진다. 하지만 그는 할리우드에서 지나치게 빨리 현실과 타협한 측면이 많다. 특히 장 클로드 반담 주연의 흉측한 영화 ‘하드 타깃’은 홍콩 시절의 전설을 파먹었다. ‘브로큰 애로’ ‘페이스오프’ ‘미션 임파서블2’ ‘윈드 토커’까지 그는 절반은 성공하고 절반은 실패했다.

홍콩에서는 지존이었지만 할리우드에서는 크고 시원한 블록버스터만을 만드는 상업감독으로 전락한 느낌이다. 특히 ‘윈드 토커’ 때는 평단으로부터 재앙이라는 소리까지 들어야 했다. 흥행에서도 크게 실패했다. 이제 우위선은 끝났다는 얘기는 그래서 나왔다.

하지만 ‘페이첵’은 우위선이 여전히 건재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번 영화 역시 할리우드 액션에 대한 강박증이 전면에 노출돼 있긴 하지만 19개의 물건으로 실마리를 풀어가는 흑백 추리영화 시절의 고전적 이야기 구조만큼은 그가 여전히 재기와 열정이 넘치는 감독임을 확인시켜 준다. 20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오동진 영화평론가 ohdjin@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