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돈 교수, ‘고구려사 연구’ 발해사도 포함해야

  • 입력 2004년 2월 1일 18시 01분


《정부는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 움직임에 대처하기 위해 ‘고구려사 연구센터’(가칭) 설립을 추진 중이다. 고구려사 연구의 권위자인 노태돈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사진)가 ‘고구려사 연구센터’의 출범을 앞두고 최근 글을 보내왔다. 노 교수는 지난해 가을 학기부터 캐나다 밴쿠버의 브리티시 컬럼비아대 한국학센터에 방문교수로 머무르고 있다. 》

정부는 ‘고구려사 연구센터’를 설립해 고구려사에 관한 학술 연구와 자료 수집에 주력하는 한편 남북 공동연구, 학술교류, 이벤트 사업 등을 하겠다고 발표했다. 정부의 ‘고구려사 연구센터’ 설립 계획을 환영하면서 몇 가지 조언을 하고자 한다.

첫째, 연구센터는 연구가 중심인 조직과 운영이 되어야 한다. 새삼 이런 교과서적인 말을 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 유혹이 따를 수 있기 때문이다. 가령 고구려의 역사와 문화를 널리 국민들에게 홍보하고 청소년을 대상으로 고구려 유적지 순례단을 조직하는 한편, 고분벽화에 보이는 고구려인의 다양한 생활상을 활용해 문화콘텐츠를 만드는 작업을 중시하는 입장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연구센터가 할 일이 아니다. 연구센터가 이런 일을 맡으면 필연적으로 조직의 비대화와 비효율성이 따르고 정작 본령인 연구사업은 크게 저해받기 마련이다. 국내외를 둘러보아도 인문사회과학연구소에서 그 연구 결과에 대한 응용까지 맡는 경우는 없다.

남북 학술교류도 고구려사 등의 학술연구를 매개로 해야 하며, 그럴 때 지속적이고 의미 있는 교류가 가능하다. 잦은 대규모 국제학술회의도 의미가 없다. 실속 없는 재탕 삼탕의 내용으로 채워진 경우가 허다하다. 그럼에도 그런 회의가 성행하는 것은 그럴듯하게 포장된 결과물을 산출할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기 때문이다.

둘째, 연구센터가 담당해야 할 연구 분야에 대해 말하고 싶다. 당연히 고구려사가 그 주된 대상이 될 것이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 앞뒤 시기에 대한 연구가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 고구려사를 중국사의 일부분으로 보는 중국학계에 대응하기 위해서도 그러하다.

중국은, 고구려를 세운 예맥족이 중국 땅에 살았던 옛 민족이고, 고구려가 일어난 지역인 고조선 땅이 기자조선 위만조선 한사군의 무대로 고대 중국의 역사영역에 속한다고 주장한다. 고구려사의 성격을 밝히기 위해서도 예맥족과 고조선의 역사에 대해 깊이 연구하지 않을 수 없다.

또 하나 중국학계의 논리적 근거가 고구려 멸망 후 그 유민들의 다수가 중국으로 흡수됐다는 것이다. 이는 곧 고구려 유민사에 대한 연구를 요하는 것이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발해사와 통일기 신라사 및 고려사에 관한 연구가 병행돼야 한다.

그리고 중국학계의 논리적 근거에 대한 검토이다. 이른바 ‘중화민족 다원일체 격국론’ 등의 민족형성 이론과 그에 근거한 역사해석에 대한 비판적 검토가 필요하다. 근본적으로는 남북한을 아우르는 차원에서 우리 학계 나름의 민족형성론을 정립해야 한다.

이 같은 연구 작업을 하려면 한국고대사학을 위시한 여러 분야의 연구가 필요하다. 연구센터는 출발 때부터 이런 점을 감안해 그 틀을 짜야 할 것이다. 샘을 깊게 파려면 넓게 파야 하는 법이다. ‘고구려사 연구센터’가 명실 공히 한국고대사 연구의 중심이 될 수 있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노태돈 서울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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