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6월 민주화항쟁 때 전두환 정권이 농성학생들을 잡아가려고 명동성당에 경찰을 투입하려 하자 “맨 먼저 내가 거기 있을 것이고, 그 다음엔 신부님들이, 그 뒤엔 수녀님들이, (그리고) 그 뒤에 학생들이 있을 것”이라며 울타리가 돼 준 김 추기경이나, 엊그제 현 정권의 신(新)관권선거 움직임과 행정수도 이전에 대한 깊은 우려를 표명한 김 추기경이나 조금도 다르지 않다. 김 추기경은 항상 그대로인데, 세월과 함께 권력이 뜨고 지고 했을 뿐이다.
▼무도한 세태,난장판 정치 ▼
우리 사회가 지나치게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균형추 역할을 해 온 김 추기경까지 이념논쟁의 도마에 오르게 된, 전도된 현실에 많은 사람들이 당혹스러워 하고 있다. 권위주의 시절에도 그런 일은 없었지 않은가. 무도한 세태와 각박한 인심만 탓하기에는 정치가 너무 어지럽다. 선거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자기부정도 서슴지 않는 정치 행태가 전반적인 도덕적 타락을 선도하고 있다.
얼마 전까지 한솥밥을 먹었던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의 이전투구가 더욱 추하다. ‘콩대를 태워 콩을 삶으니 솥 안의 콩이 우는구나. 본디 같은 뿌리에서 나왔거늘 어찌 이리 급하게 볶아대는가.’ 조조의 아들 조식의 ‘칠보시(七步詩)’가 꼭 들어맞는 양당의 마구잡이 싸움은 구악(舊惡)들도 혀를 내두를 지경이다. 김 추기경이 사이버공간에서 엉뚱한 수모를 당하고 있는 것도 시비와 선악을 분별하기 어려운 난장판 정치의 오염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와중에도 ‘멱살잡이 효과’ 운운하며 잇속을 헤아리는 정치권의 이악스러움엔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양당 관계자들은 2002년 대선을 그 예로 든다. 당시 민주당 내 친노(親盧)파와 반노(反盧)파의 치열한 대치가 상대적으로 민주당과 노무현 후보에 대한 유권자들의 관심을 증폭시켜 대선전을 주도할 수 있었다는 얘기다. 저잣거리에서 구경꾼을 모으려면 싸움판을 벌여야 한다는 논리나 같다.
지배세력 교체를 위한 천도론에도 이 같은 정치적 상술이 깔려 있는 듯하다. 올해 연두기자회견 때만 해도 “천도가 아니고 신행정수도 건설로, 수도권 기능의 극히 작은 한 부분이 이전되는 것이다”고 했던 노 대통령이 불과 보름 만에 말을 바꾼 것을 달리 해석하기가 쉽지 않다. 그렇다면 일단은 소기의 성과를 거둔 것처럼 보인다. 아무튼 거센 논란을 불러일으켰으니까.
▼총선의 상흔은 또 언제까지 ▼
애당초 행정수도의 ‘행정’은 무의미한 접두어이거나 정치적 수사에 불과했다. 미국의 워싱턴도 그냥 수도이지 행정수도가 아니며, 뉴욕은 뉴욕일 뿐이다. 더구나 우리 형편에 두 개의 수도는 가당치도 않다. 뻔한 일인데도, 노 대통령과 정부가 천도를 공식화한 시기나 그 명분이 영 께름칙하다. 총선이 무슨 왕조시대 역성혁명(易姓革命)이라도 되나. 국민주권시대에 구세력과 신세력의 국가지배는 또 무슨 말인가.
조선조 500여년 동안 개성사람들이 돼지고기를 씹으면서 왜 ‘성계고기’라고 불렀는지 새겨볼 필요가 있다. 한양으로 천도한 태조 이성계에 대한 증오였다. 아울러 극심한 편 가르기로 우리 사회 곳곳에 깊은 상흔을 남긴 2002년 대선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벌써 이상과열 양상을 보이고 있는 4월 총선의 조짐도 좋지 않다. 이대로 가다가는 재작년 대선 못지않은 상처를 남길 수도 있다. 그것은 또 언제 아물지….
임채청 편집국 부국장 ccl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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