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업다이크의 동명 원작소설을 호주의 조지 밀러 감독이 영화로 만든 이 작품에서 그는 순진한 여성 세 명을 유혹해 자신의 아이를 낳게 하는 악마로 나온다. 여인을 유혹할 때마다 음흉한 웃음을 흘리는 모습은 정말 ‘악마스러우면서도’ 동시에 섹시하게 느껴진다. 별로 잘 생긴 외모도 아닌 데다 머리까지 벗겨진 그에게 많은 여성들이 환호성을 보내는 이유는 그가 믿기지 않을 만큼 야성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의 바람둥이라는 얘기다. 세 여성과 ‘놀아나는’ 내용인 만큼 그에게 딱 맞는 영화다.
하지만 여기에 동의하지 않을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누구나 나름대로 잭 니컬슨의 대표작을 꼽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밀로스 포먼 감독의 ‘뻐꾸기 둥지위로 날아간 새’에서 맥 머피를 연기한 잭 니컬슨을 최고라고 얘기할 것이다. 또 어떤 사람들은 로만 폴란스키의 필름 누아르 걸작인 ‘차이나타운’에서 어떤 압력에도 입꼬리를 슬쩍 올리며 냉소적인 웃음을 흘리는 모습을 잊을 수 없다고 할 것이다. ‘아메리칸 뉴 시네마’의 대표격 작품이자 로저 코만의 저예산 영화인 ‘이지 라이더’에서 머리숱이 많았던 그를 얘기하는 사람들도 더러 있다. 하지만 다 소용없는 일이다. ‘배트맨’의 악당에서부터 ‘호파’의 노조위원장, ‘샤이닝’의 미친 아빠,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의 강박증 환자까지 그는 도저히 특정 작품 하나로는 설명이 불가능한, 괴물 같은 배우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잭 니컬슨이야말로 스타니슬로프스키의 연기 이론을 온몸으로 체화한 배우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배우와 등장인물간의 정서적 일체를 추구하는 스타니슬로프스키의 이론을 그만큼 자연스럽게 실천해 내는 배우는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잭 니컬슨 안에는 잭 니컬슨이 너무도 많다’는 것이다. 그래서 관객들은 늘 그의 일부분 혹은 또 다른 면만을 볼 뿐이다. 일흔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그는 계속해서 새로운 연기를 뿜어내고 있다.
새 영화 ‘사랑할 때 버려야 할 아까운 것들’은 어찌 보면 그에게는 그리 어렵지 않았을 법한 로맨틱 코미디 영화다. 성공한 사업가 역으로 좌충우돌 끝에 사랑에 빠지는 역은 이미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에서 선보인 바 있다. 그래서인지 이번 영화에서 그는 슬렁슬렁 물 흐르는 듯한 연기를 펼친다. 전작의 이미지 탓에 진부하긴 해도 느긋하고 편안하며 무엇보다 잭 니컬슨 특유의 뻔뻔스러움도 즐길 수 있다. 실로 오랜만에 정열적인 베드신을 함께 연기한 다이앤 키튼과는 워렌 비티 감독의 ‘레드’에서 이미 한 차례 로맨스를 나눈 바 있다. 13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영화평론가 ohdjin@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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