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 사마흔을 놓쳐버린 조고는 그날부터 은근히 2세 황제가 천하의 실상을 알게 되는 게 걱정되기 시작했다. 자신의 수족으로 황제를 에워싸게 했다고 믿었는데, 다시 빈틈이 생겨 좋지 않은 바깥소식이 황제의 귀로 새어 들어갔기 때문이었다.
전에 조고는 자신의 권세가 어느 정도인지를 알아보기 위해 슬며시 2세 황제와 견주어 본 적이 있었다. 이사(李斯)를 죽이고 승상이 된 지 오래지 않은 어느 날, 2세가 여러 신하들과 더불어 궁중을 거닐고 있을 때였다. 그림자처럼 2세 곁에 붙어있던 조고가 마침 뜰 안에 뛰놀고 있는 사슴을 가리키며 큰소리로 말했다.
“저기 말이 있습니다.”
“승상이 잘못 보신 것 같소. 사슴을 말이라고 하시는구려.”
2세가 어이없다는 듯 웃으며 그렇게 대꾸했다. 조고가 시치미를 뚝 떼고 우겼다.
“폐하 그렇지 않습니다. 저것은 틀림없이 사슴입니다.”
그 말에 2세가 여전히 웃음을 거두지 않고 곁에 있는 신하에게 물었다.
“경은 저게 사슴이요, 말이요?”
그런데 그 대답이 뜻밖이었다. 조고의 권세를 두려워하는 그 신하는 조고의 눈치를 할끔거리면서 대답했다.
“승상의 말씀대로 말인 것 같습니다.”
그러자 의아해진 황제가 곁에 있는 신하들에게 차례로 물어보았다. 어떤 신하들은 황제의 명을 지엄하게 여겨 사슴이라고 바로 말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조고에게 아첨해 말이라고 했다. 그리고 더러는 어느 쪽도 편들지 못해 가만히 입을 다물고 있기도 했다.
황제는 속으로 괴이쩍게 여기면서도 따지는 게 귀찮아서 그 일을 우스개로 넘겨버렸다. 하지만 조고는 그렇지가 않았다. 사슴이라고 바로 말한 사람들을 모두 기억해 두었다가 하나하나 표독스레 앙갚음했다. 일생 익힌 법률을 올가미로 삼아 그들을 옥에 가두고 매질하거나, 심지어는 죽음으로까지 내몰았다.
그렇게 되자 조정의 신하들은 모두 조고를 전보다 더욱 두려워하게 되었다. 하나같이 조고에게 빌붙으며 감히 그의 권세에 맞서려들지 않았다. 그리하여 함곡관 동쪽이 온통 뒤집히는데도 조고는 황제를 속일 수 있었다.
“관동(關東)의 도적들은 보잘것없는 난민들에 지나지 않습니다. 아무 일 없을 것입니다.”
그 같은 조고의 말만 황제의 귀에 들어갔을 뿐, 아무도 관동의 실상을 바로 말해주지 않았다. 그런데 장함이 패배를 거듭하게 되면서 사정은 달라졌다. 장함이 잇달아 원군을 요청하고, 조(趙) 연(燕) 제(齊) 초(楚) 위(魏) 한(韓)이 모두 자립하여 왕을 일컫게 되자, 조고의 힘으로도 쏟아져 들어오는 흉보(凶報)를 다 막아내기는 어려웠다. 그러다가 사마흔의 일을 당하고 보니 조고로서는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다시 조고를 두렵게 하는 일이 생겼다. 옛적 육국(六國) 중에서도 가장 허약하던 한(韓)나라 쪽으로 나 있는 것이라 등한히 여겼던 무관(武關) 쪽이 시끄러워졌기 때문이었다.
“초(楚)의 별장(別將)으로 저희끼리 패공이라 일컫는 유방이란 자가 있습니다. 처음부터 항우와는 따로 서진(西進)하여 함곡관으로 오고 있었는데, 홀연 길을 바꾸어 옛 한나라 땅을 휩쓸더니 이제 무관으로 밀고 들려고 합니다.”
사방 풀어놓은 자들로부터 그 같은 말을 듣자 조고는 가슴이 철렁했다. 동쪽의 일만으로도 걱정이 태산인데 이제는 남쪽까지 돌아봐야 했다. 그런데 며칠 안돼 아우 조성(趙成)이 낯선 사람 하나를 데리고 가만히 조고를 보러 왔다.
“저 사람은 누구냐? 무슨 일로 이 깊은 궁중까지 데려 왔느냐?”
조고가 그렇게 아우에게 묻자 조성이 어두운 얼굴로 대답했다.
“형님. 이제 이놈의 진나라가 성하기는 틀려버린 것 같소. 저자는 패공 유방이 형님에게 몰래 보낸 사자요. 수작을 들어보니 무턱대고 목 베기보다는 형님을 만나보게 해주는 게 나을 것 같아 이리로 데려왔소.”
조고도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패공이 보낸 사자를 가까이 불러 먼저 누구인지부터 물었다. 사자가 거침없이 대답했다
“저는 위나라 토박이로 이름은 영창(寧昌)이라 합니다. 젊어서부터 책읽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으나 어지러운 세상을 만나 뜻을 펴볼 길이 없었는데, 다행히 패공께서 거두어 주시어 이렇게 사자의 소임을 맡고 승상을 뵈러 왔습니다.”
“네놈은 참으로 겁도 없구나. 진나라를 거역하는 도적 떼에 들어간 것만으로도 이미 죽을 죄인데, 감히 도성까지 숨어들어 승상인 나와 내통까지 하려들다니.”
계집같이 높고 째지는 듯한 목소리지만 조고는 짐짓 그렇게 겁을 주어 보았다. 그러나 영창이란 자는 눈도 깜박 않았다.
“저는 내통하러 온 첩자가 아니라 대초(大楚) 정서대장군(征西大將軍)인 패공 유방의 뜻을 전하러 온 사자입니다. 패공께서 이르시기를, 승상께서는 부디 밝게 보시고 깊이 헤아려 달라 하시었습니다. 관동에서 장함 장군과 항(項) 상장군께서 그리 하셨듯이, 승상께서도 우리 패공과 힘을 합쳐 천하의 일을 풀어 가시면 어떻겠습니까?”
그리고는 패공의 세력을 한껏 부풀려 떠벌린 뒤 되레 조고에게 겁을 주었다.
“자칫하면 승상은 나라를 기울게 한 간신으로 몰려 그 이름은 죽백(竹帛)에 욕되게 올려지고, 몸은 머리와 어깨 아래가 따로 떨어져 물 선 구덩이에 뒹굴게 될 것입니다.”
원래 조고는 어려서 양물(陽物)을 떼어 낸 환관이라 남자다운 기상이 없었다. 거기다가 권력에 맛들이고 탐욕을 길러 가는 사이에, 젊은 날의 수양과 책읽기로 겨우 시늉을 내던 자잘한 품격까지도 지켜내지 못했다. 자신의 목 떨어진 시체가 물구덩이에 뒹구는 상상만으로도 벌써 온몸이 오싹했다. 겨우 자신을 억눌러 태연한 척하며 영창에게 몇 마디 더 묻고 궁궐 밖으로 내보냈다.
“가서 네 주인에게 일러라. 때가 되면 내 편에서 사람을 보낼 터이니 그때까지는 모든 일을 삼가고 또 삼가 행하라고.”
조고는 다음날 영창을 불러 적지 않은 금은을 주며 그렇게 말했다. 슬그머니 두 다리를 걸친 셈인데 그럴수록 불안은 더 커졌다. 언제 2세가 그 모든 위급한 실정을 알고 자신에게 죄를 물을지 몰라 그날 이후로는 병을 핑계 대고 조회(朝會)에조차 나가지 않았다.
한때는 진나라에 천하를 아우르게 하고 황제를 일컬을 만큼 총애를 보냈던 하늘이라 그런지 진나라가 무너져 내리는데 끝내 무심하지는 못했다. 즉위 3년 째 8월 어느 날 밤 2세 황제는 꿈에 하얀 호랑이가 자신의 수레 왼쪽 덧 말[좌참마]을 물어뜯어 죽이는 꿈을 꾸었다. 그 꿈을 괴이쩍게 여긴 2세는 복자(卜者)에게 물어 꿈을 풀어보게 하였다.
“경수(涇水=함양 동쪽의 강물)의 귀신이 성나 재화(災禍)를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복자가 점괘를 뽑아보고 그렇게 일러주었다. 이에 2세는 망이궁(望夷宮)에서 정성으로 재계(齋戒)한 다음, 경수의 귀신에게 제사를 올리면서 흰 말 네 필을 경수에 빠뜨렸다.
하지만 그렇게 제사로 귀신을 달래놓고도 2세의 마음은 편치 않았다. 무언가 더 큰 재앙을 미리 일러주는 조짐 같아 불안해 하다가 문득 곁에 두고 부리는 신하에게 말했다.
“관동(關東)의 도적들은 어찌 되었느냐? 그리고 요즘 승상은 왜 보이지 않느냐? 어서 사람을 보내 승상에게 도적들은 어찌 되었는지 물어보아라!”
그런 2세의 목소리에는 제법 노기까지 서려 있었다. 조고에게 사신으로 가게 된 자가 마침 조고의 사람이라 그 같은 황제의 노기를 부풀려 전했다. 그러잖아도 불안해하던 조고는 그 말을 듣자 올 것이 왔다고 보았다. 두려워 떨다가 가만히 사위인 함양령(咸陽令) 염락(閻樂)과 아우 조성을 불러 말했다.
“황제가 나의 간언을 받아들이지 않더니만 이제 일이 급해지자 우리 집안에 그 죄를 뒤집어씌우려 한다. 이대로 손을 놓고 당할 수만은 없는 일이다. 나는 이제 황제를 폐위시키고 공자 영(영)을 새 임금으로 세우고자 하는데 너희들은 어떠냐? 공자 영은 어질고 스스로를 낮추는 이라 백성들이 모두 그의 말을 따르니 새 임금으로 세워도 큰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염락과 조성도 그리된 마당에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여겼다. 말없이 고개를 주억거려 조고의 뜻을 따랐다. 이어 조고는 진작부터 제 사람으로 세워놓은 낭중령(郎中令)을 불러 한편으로 끌어들였다. 그런 다음 다시 손발처럼 부리는 내시들을 궁궐 안에 풀어 거짓으로 도적이 들었다고 외치고 다니며 소동을 부리게 했다.
궁궐 안은 곧 벌집을 쑤셔놓은 듯 시끄럽고 어지러워졌다. 조고는 도적이 들었다는 핑계로 염락에게 군사들을 일으키게 하는 한편, 그 늙은 어미를 자신의 부중(府中)에 데려가 가둬놓게 했다. 혹시라도 염락의 마음이 변할까 걱정이 되어 어미를 인질로 잡아둔 셈이었다.
오래잖아 염락이 군사 1000여명을 모아오자 조고는 염락과 낭중령에게 그 군사를 내어주며 말했다.
“너희들은 지금 즉시 망이궁으로 가서 2세 호해(胡亥)를 죽여 버려라. 위령(衛令)이든 낭관(郎官)이든 너희들을 막는 자가 있으면 또한 모두 죽여도 좋다!”
염락과 낭중령이 군사들을 이끌고 망이궁 전문(殿門)으로 밀고 들자 놀란 위령과 복야(僕射)가 달려 나와 막았다.
“이곳은 황제폐하께서 머물고 계시는 궁궐입니다. 두 분은 무슨 군사를 이끌고 여기까지 오셨습니까?”
그러자 염락은 다짜고짜 위령과 복야를 묶게 하고 꾸짖었다.
“도적이 들어 여기까지 왔는데 어찌하여 막지 않았는가?”
“군사들이 궁궐을 빙 둘러막아 삼엄하기 그지없는데 어떻게 도적이 감히 궁궐 안으로 들어온단 말입니까? 더구나 이곳은 제가 아침부터 지킨 곳인데 도적은커녕 수상한 그림자도 얼씬하지 않았습니다.”
묶인 위령이 어이없다는 듯 그렇게 말했다. 그러나 염락은 대꾸 한마디 변변히 하지 않고 그 위령을 목 베게 한 뒤 군사를 몰아 망이궁 안으로 쳐들어갔다.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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