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노블리안스]김창원/명동 사채시장은 '기업정보 시장'

  • 입력 2004년 2월 22일 19시 36분


코멘트
명동사채시장과 국가정보원 그리고 소방서의 공통점이 무엇인지 아시나요?

명동사채시장은 기자들뿐만 아니라 검찰, 기업 정보팀 관계자 등이 늘 주목하는 곳입니다.

천문학적인 검은돈이 흘러들어 깨끗이 세탁되기도 하고, 기업 어음이 얼마에 할인돼 왜 나도는지 등에 대한 고급 정보가 돌아다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최근 대통령 측근비리수사가 진행되면서 이곳에 둥지를 튼 거의 모든 사채업자들은 최소 한번 이상씩 검찰을 드나들었다는 후문입니다. 또 명동사채시장은 기업의 부도 징후를 가장 빨리 감지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이 때문에 시중은행조차 기업의 지급능력을 알아보기 위해 명동의 사채시장을 기웃거립니다. 특히 외국 계 지분이 많은 은행들은 명동에서 나오는 정보를 거금을 주고 정기적으로 받아볼 정도입니다.

하지만 중요한 사실은 명동사채시장의 정보는 일정한 ‘가공’을 거치지 않는 한 조각난 첩보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여러 가지 ‘팩트’(사실)와 ‘설(說)’이 알짜 정보로 재생산되기 위해서는 주어진 사실들을 하나로 꿰는 해석력이 필요하다는 것이지요.

그 역할을 하는 사람들은 명동에서도 손을 꼽을 정도라고 합니다. 주로 명동바닥에서 수십 년 활동해온 사채업자들인데요, 이들이 여러 첩보들을 모자이크 맞추듯 짜맞춰 가면서 심증을 굳히면 그게 바로 고급 정보가 된다는 겁니다.

이는 국가정보원의 정보력도 마찬가지랍니다. 국정원은 전국 곳곳에 정보망을 깔아놓고 있어서 각 지역에서 올라오는 정보를 취합하다 보면 저변에 흐르는 희미한 기운을 포착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국정원의 정보력도 ‘가공’인 셈입니다.

우스운 사실은 명동사채시장과 국정원의 ‘정보생산’ 시스템은 소방서와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겁니다. 소방서는 일단 화재신고가 접수되면 몇 대의 소방차를 보내고 몇 명의 인원을 투입하느냐는 순간의 판단이 중요합니다.

이때 판단 기준이 뭔지 아십니까? 바로 신고전화건수입니다. 신고 건수가 일시에 수십 건 걸려오면 큰 사고, 한두 통이면 장난전화 아니면 큰 사고는 아니라는 것이죠.

구슬도 꿰어야 보배이듯 원석(原石) 그대로의 알짜 정보는 없는 모양입니다.

김창원 경제부 기자 changkim@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