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마당]허창수/‘경영권 게임’ 외국인에 밀리나

  • 입력 2004년 3월 8일 19시 1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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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결산법인의 주주총회가 시작되었다. 형식적인 통과의례에 불과했던 주주총회가 외환위기를 계기로 실질적인 의사결정기구로 탈바꿈해 오더니 올해에는 급기야 대기업인 SK㈜의 경영권을 대상으로 적대적인 표 대결을 하기까지에 이르렀다.

SK㈜의 경영권 다툼에는 외국자본이 적대적 일방으로 참여했다는 점이 특히 관심을 모은다. 외국자본이 경영권을 장악하고 있는 기업은 이미 낯설지 않지만 주주총회에서의 적대적 표 대결은 이번이 처음이다.

주주에게 경영자의 국적은 관심사항이 아니다. 주식투자자는 자신의 투자수익을 극대화해 줄 수 있는 사람이 경영자로 선임되면 그뿐이다. 하지만 이미 3개 시중은행의 경영권이 외국인에게 넘어간 상태에서 기간산업의 경영권까지 외국인에게 넘어간다는 사실은 그리 유쾌한 일이 아닐 것이고, 투자수익을 조금 양보하더라도 한국인이 경영권을 유지해야 한다는 애국심이 발동될 만도 하다.

문제는 한국인이 경영권을 유지하고 있을 때에는 별 볼일 없던 주가가 외국인이 경영권을 인수하려고 하면 급격하게 상승한다는 사실이다. 이는 기업가치 혹은 주주가치의 상승을 의미한다. SK㈜의 주가는 작년 3월 14일에 5890원까지 떨어졌다가 올 2월 말 현재 4만3650원을 기록했다. 외국인이 관심을 가지기 전에 SK㈜의 주가가 4만5000원 수준을 유지했다면 이들이 그 비용을 들이고도 경영권 인수를 시도했을까. 실익이 없으므로 시도하지 않았을 것이고 오늘의 고민도 없었을 것이다.

경제는 게임이며 외국인은 이겼고 우리는 진 것이다. 즉 오늘의 상황은 우리의 잘못이다. 본질가치 4만5000원 내외의 주식이 1만원 이하에 머물러 있도록 한 경영자와 투자자의 책임이다. 특히 경영자와 기관투자가의 잘못이 크다. 게임의 규칙을 만드는 정부도 여기서 자유로울 수 없다.

3월 12일의 주주총회를 앞두고 SK그룹은 획기적인 기업지배구조 개선 방안을 제시해 시장에서 긍정적인 반응을 얻은 바 있다. 하지만 아쉬움이 있다. SK㈜의 경영권에 대한 적대적인 도전이 제기되기 전에 이런 개선 방안을 자발적으로 시행해 주주가치를 극대화했으면 주가 저평가 현상을 피할 수 있었을 것이고 오늘의 위기도 없었을 것이다.

국내 기관투자가라도 SK㈜의 주가 저평가 현상을 외국인보다 먼저 투자기회로 인지했더라면 엄청난 규모의 투자수익과 함께 국부유출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아쉽게도 전문가라는 기관투자가도 지난해 초 SK글로벌 사태로 SK㈜의 주가가 급락하자 일반투자자와 함께 투매에 동참했을 뿐이다.

저평가의 주요 원인은 기업지배구조의 취약성이다. 외환위기 이후 대기업들은 그나마 기업지배구조 개선에 어느 정도 진전을 보여 왔으나 중소기업의 경우는 여전히 취약하다. 외국인의 다음 목표는 우량 중소기업이 될 가능성이 높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다. 감정적으로 단기 대응하는 것보다는 장기적 관점에서 본질적인 해결방안을 시스템에 심어 더 이상의 국부유출을 막도록 하자. 게임은 이기는 것이 최선이기 때문이다.

허창수 서울시립대 교수·경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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