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한숨도 자지 않고 아침을 맞았습니다. 한복으로 옷을 갈아입고, 이제나저제나 하고 목을 길게 빼고 기다렸습니다. 끝내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었던 아버지가 밖으로 뛰어나가자, 여덟 명의 오빠들도 줄줄이 뒤따라 나가 영남루 돌계단 위에 나란히 섰습니다. 길이란 길은 밀양 사람들로 터져 나갈 듯했고, 두 손을 번쩍 쳐들고 ‘김원봉 장군 만세! 김원봉 장군 만세!’라고 외치는 소리가 넘실거렸습니다.
국방색 인민복 차림의 큰오빠는 큰오빠가 아니라 그야말로 김원봉 장군, 나는 똑바로 선 채로 기절할 것만 같았습니다. 둥그런 모자 쓴 얼굴이 나와 너무도 비슷해서, 정말 나의 오빠라는 실감이 솟고 가슴과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큰오빠는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장남인데 집안을 지키지 못해서 죄송합니다”라고 무릎 꿇고 아버지에게 사죄하고는, 어머니가 지은 비단 한복으로 옷을 갈아입고, 아버지, 어머니, 경봉 춘봉 익봉 용봉 봉철 봉기 덕봉 구봉, 여덟 오빠와 나까지 해서 열두 명이 조상의 위패 앞에 절을 올렸습니다.
다음 날 아침입니다. 세면실에서 이를 닦고 있는데 거울 속에서 큰오빠가 다가왔습니다. 나는 부끄러워 칫솔을 입에서 꺼냈습니다. 큰오빠는 내 옆에 서더니 미소지으며 “공부 열심히 해서 훌륭한 여자가 되거라”하며 잠자리표 HB 연필 다섯 다스와 영어사전을 주었습니다. 나는 큰오빠의 선물을 받아들고 소금 때문에 찝찝한 입으로 “고맙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 집에 머문 것은 딱 하루, 얘기를 나눈 것도 한 번 뿐이었습니다. 큰오빠는 우리 집에서 걸어 5분도 걸리지 않는 조선민족 혁명당 당사로 갔습니다. 오빠들이 몇 번인가 보러 갔지만 늘 사람들이 복작복작 인산인해를 이루어, 우리 가족들이 비집고 들어갈 분위기가 아니었습니다.
글 유미리
번역 김난주 그림 이즈쓰 히로유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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