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한국인은 공공질서 의식이 약하다는 얘기를 듣지만 그건 일본도 마찬가지. 특히 오사카 출신인 나는 ‘오사카 파워’의 접점을 발견한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그러나 옆은커녕 앞도 보지 않는 듯한 시내버스들의 태도는 정말 의외였다. “무조건 비켜라. 내가 간다” 식의 위협적인 끼어들기, 진로 방해, 급발진에 속도위반. 일본이라면 시민 투서로 그런 버스운전사는 틀림없이 목이 달아날 것이다.
CD가게에서 CD를 고르는데 진열대와 내 사이를 다른 사람이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간다. ‘참 무례하군’ 하고 생각하는 찰나, 이번엔 점원이 내 앞을 지나간다. 일본에서라면 손님이 무언가를 보고 있으면 그 사람의 등 뒤로 돌아 지나간다. 주위를 돌아보기보다는 자기 앞만 보는 한국인?
한국에 오기 전 한국엔 ‘내가제이루(내가 제일)’라는 말이 있다고 들었다. 한국에서 살아보니 확실히 다들 자기 주장이 강하다. 같이 일을 해봐도 “저는” “나는” “내 생각은…” 등의 말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그러나 자기 어필로 끝날 뿐 말한 내용에 책임을 지고 행동하지 않는 경향이 엿보인다. 일본에는 ‘불언실행(不言實行)’이라는 격언이 있다. 말로 떠들기보다 조용히 실행하는 게 미덕이라는 가르침이다. 한국에서는 ‘유언불실행(有言不實行)’의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앞만 보는 한국인’의 모습은 ‘해외유학 열기’에서도 눈에 띈다. 나도 해외유학은 대찬성이다. 그러나 ‘기러기 아빠’ 혼자 서울에 남겨 놓고 부인과 아이들은 캐나다나 미국으로 유학하는 게 중산층 사이에 유행한다니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다. 가족이 함께 사는 행복보다 앞만 보고 달리는 것으로 보인다. 해외이민 한국인이 400만명으로 이 부문 세계 최고란다. “한국인 여러분, 그렇게 한국이 싫습니까”라고 물어보고 싶어질 때가 있다.
희로애락을 느끼는 에너지는 일본인의 120%쯤 된다고 생각되는 사랑스러운 한국인. 하지만 너무 달리지만 말고 가끔은 멈춰 서서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는 것도 중요하지 않을까.
한국에서 산 지 11개월. 매달 한 번씩 일본의 광고인 400여명에게 ‘서울 리포트’를 써 보내고 있다. 광고 관련 소식과 한국의 색다른 점을 느끼는 대로 정직하게 쓰고 있는데 이를 읽고 한국이 가깝게 느껴졌다는 반가운 답장이 일본의 젊은이들로부터 오고 있다. 한국은 겉과 속이 다르지 않은 사람들이 사는 곳, 장점도 단점도 숨김없는 솔직한 나라, 그래서 더 정이 가는 나라임에 틀림없다.
다루미 사토시 제일기획 제작담당 상무
약력-1946년 일본 오사카(大阪)에서 태어나 간사이(關西)대에서 신문학을 전공했다. 하쿠호도 광고대행사에서 20년 넘게 근무했으며 지난해 한국으로 건너왔다. 일본에서 근무하는 동안 프랑스 칸광고제 금사자상(1981년), 뉴욕광고제 우수상(1989년)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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