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하임숙/유통업계 ‘현장경영’

  • 입력 2004년 3월 15일 19시 13분


“바이어들이 요즘 저 때문에 죽을 맛이지요. 채소 산지에는 가 본 적 있느냐, 치즈의 종류와 특색은 뭐냐 등을 자꾸 묻거든요. 대답을 못하면 ‘15년간 바이어를 했어도 당신은 사무직’이라며 호통을 치지요.”

최근 만난 현대백화점 하원만 사장은 이렇게 유통가의 분위기를 전했다.

요즘 유통업계에서는 ‘현장 경영’ 바람이 뜨겁다. 경기가 살아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 데다 물건을 고르는 소비자의 눈은 더 까다로워졌기 때문이다. ‘싱싱한’ 정보가 없으면 물건도 팔리지 않으니 유통업계 사람들 입에서 “앉아서 장사하는 시대는 지났다”는 말이 나오는 건 당연하다.

현대백화점뿐만이 아니다. 13일 오전 4시 경기 일죽과 양지의 롯데마트 물류센터에서는 이철우 대표이사와 협력업체 대표들, 매입팀장(바이어) 50여명이 모여서 배송현장을 지켜봤다. 섭씨 영하 18도로 유지되는 냉동보관 창고에 들어가서 미팅을 하기도 했다.

이날 모인 사람들은 △신선식품은 최적의 온도를 유지하는 시스템을 확립하기 △납품 절차를 간소화해 1차 고객인 협력업체를 편하게 하기 △운송시간을 두 시간 앞당기기 등을 논의했다.

이마트의 금석헌 신선식품 수산 과장은 우리나라의 어류에 ‘이름’을 붙여준 사람으로 유명하다. ‘안동 간고등어’ ‘추자도 굴비’ ‘제주 은갈치’ ‘섬진강 재첩’들이 이름을 찾은 건 그가 현지의 수협 조합장들을 만나고 설득해 중간 유통과정을 없애는 대신 제품에 브랜드를 달도록 상품을 규격화한 덕분이다.

이 같은 현장경영 바람을 지켜보는 소비자들은 즐겁다.

대형 유통업체에 들어오려는 업체들이 줄을 서 있는 마당에 현장을 일일이 다녀야 하는 바이어들은 고달파졌지만 말이다. 구매를 대행해 주는 업자나 중간 유통업체가 끼지 않고 대형 유통업체에서도 산지 직접 구매를 강화해 싸고 좋은 물건을 살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졌다. ‘영광 굴비’뿐 아니라 ‘추자도 굴비’도 살 수 있는 식으로 소비자의 선택 폭이 넓어졌음은 물론이다.

하임숙기자 arteme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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