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7사교육비 경감대책의 핵심내용인 EBS 수능강의는 과열된 사교육 수요를 ‘준(準) 공교육’의 장으로 흡수하겠다는 것이다. 곧 정부투자기관이 사교육시장의 고가상품을 전체 수험생에게 교재비만 받고 저렴하게 공급하겠다는 것이다.
학벌 중시라는 현실과 사교육의 시장논리를 인정하는 바탕 위에서 강력한 사교육 대체재를 제공해 교육복지의 이상을 구현한다는 점에서 국민적 지지와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그런데 EBS 강의와 수능문제를 ‘억지로’ 연계시키려는 교육인적자원부의 태도에는 분명히 문제가 있다. 그런 억지 연계는 현실적으로 어렵거니와 설사 그렇게 한다 해도 큰 부작용을 낳을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 진행 중인 1단계 수능강의의 교재 가운데 한국교육과정평가원, EBS, 강사의 정상적인 협조체제 위에서 제작되지 못한 것이 많다. 그래서 ‘급조된 교재’, ‘일개 학원강사의 개인교재’라는 지적을 받기도 한다. 그런 마당에 교육부나 평가원이 수능출제위원들에게 이 교재에서 출제해줄 것을 종용해도 자부심이 강한 그들이 지시를 수용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수능강의 자체도 현재로는 ‘사실 오류’나 ‘가치 편향’의 문제를 교정받지 못한 채 제공되고 있다. 사교육시장의 강의가 아무런 여과장치 없이 제공되고 있는 것이다.
나아가 강사가 교과내용에 충실한 강의를 하고 출제위원이 그 가운데 교육목적상 공감되는 내용을 출제한다 하더라도 강사가 ‘찍어주고’ 출제위원이 출제를 강요받는 형태라면 이는 교육의 본질을 해치는 것이다.
또 다른 부작용으로는 EBS 교재에서 수능문제가 ‘베끼기’식으로 그대로 출제될 것으로 인식돼 그동안 중고교 교육의 다원성과 질적 발전에 나름대로 일익을 맡아 온 참고서 출판사들이 직격탄을 맞고 있다는 점이다.
EBS 수능강의는 본질적으로 고가의 사교육에 대한 ‘대체재’이며 침체에 빠진 공교육에 대한 ‘보완재’여야 한다. 수험생들이 EBS 강의를 찾도록 해야 한다는 현실적인 고충은 충분히 이해하나 EBS 교재에서 베끼고 EBS 강의에서 찍어주기를 할 것처럼 수험생들을 현혹한다면 이는 교육 자체를 죽이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지금 형성된 EBS 열풍이 사교육비 문제에 대한 진정한 ‘해열제’와 ‘처방제’의 기능을 하기 위해선 EBS 수능강의가 ‘본질’에 충실한 방향으로 추진돼야 한다. 사교육시장의 교육상품에 비해 수능의 적합성이나 교과 적합성에서 ‘고품질’의 교재와 강의를 만드는 것이 이번 EBS 수능강의 성패의 관건이다. 국가예산의 지원을 받고 무료에 가까운 강의로 경쟁하는 것이므로 충분히 ‘비교우위’를 가질 수 있다.
이처럼 정도(正道)에 충실한 서비스로 올해 수능시험이 끝난 뒤 수험생들 사이에서 “학원 다니는 것보다 낫다” “EBS 덕분에 수능을 잘 봤다”는 말이 회자되면 내년엔 교육부측이 EBS에서 수능문제가 나오지 않는다고 해도 학생들은 EBS로 몰려들 것이다.
최 강 EBS 수능강의 강사·사회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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