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127>卷三. 覇王의 길

  • 입력 2004년 4월 15일 17시 09분


20萬을 산 채 묻고⑨

자신이 거느렸던 장졸 20만이 밤사이 산 채로 땅에 묻혀버린 것을 장함이 안 것은 그 이튿날 늦은 아침이었다. 간밤의 과음으로 머리가 무거워 군막 밖이 밝아도 일어나지 못하고 잠자리에서 뒤척이고 있는데 사마흔이 허옇게 질린 얼굴로 들어와 소리쳤다.

“장군 일어나십시오. 큰일 났습니다!”

“무슨 일이오?”

매사에 차분한 사마흔이 그러는 게 심상치 않아 장함이 놀라 일어나며 물었다. 사마흔이 지그시 이를 사려 물며 말했다.

“신안성 남쪽 골짜기에 머물고 있던 우리 군사 20만이 밤새 연기같이 사라졌습니다. 잔심부름하는 졸개 하나 남지 않았습니다!”

“그건 또 무슨 소리요?”

“어젯밤 소란이 아무래도 마음에 걸려 아침에 가 보니 움막은 모두 불타고 장졸들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초나라 군사들의 말로는 경포와 포장군이 5만 군사를 이끌고 잠들어 있는 그들을 모두 그 골짜기 끝 벼랑으로 몰아붙인 뒤, 그 아래로 떨어뜨리고 산 채 묻어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때 다시 동예가 뛰어들었다. 눈물을 씻고 있는 게 그도 진나라 장졸들이 모두 죽은 일을 안 것 같았다.

“도위(都尉)도 그 일로 왔는가? 우리 장졸들이 밤새 모두 함몰되었다는 것….”

“그렇습니다. 장군. 정말 어찌 이럴 수가 있습니까? 20만의 죄 없는 목숨을 어찌 하룻밤 새 한 구덩이에 묻어버릴 수가 있단 말입니까? 장군이 항복하신 것도 저들을 살리고자 하심이 아니었습니까?”

그 말에 장함도 천길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그때까지도 항복의 욕됨을 덜어주는 가장 큰 구실이 그들 장졸들을 살린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제 그 구실이 없어졌으니, 남은 것은 자신의 영달뿐이었다. 그 뒤 장함은 끝내 옛적의 기개를 되찾지 못하고 항우의 손발이 되어 구차히 살다가 비굴하게 죽어가게 되는데, 그 시작은 그날의 그 아뜩한 추락의 느낌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었는지 모르겠다.

그때는 범증도 진나라 장졸들이 산 채 묻힌 골짜기를 찾아보고 후회를 되풀이하고 있는 중이었다.

(아뿔싸! 내가 인정머리 없고 식견이 짧았구나. 그 뜻을 거슬러 마음을 상하게 하는 일이 있더라도 상장군을 깨우치고 말려야 했다. 이제 관중으로 들어가면 저들의 부모형제와 처자를 만날 것인데, 어떤 말로 그들을 달랠 수 있단 말이냐? 부모 형제를 다섯만 쳐도 백만의 원수가 기다리는 땅에서 어찌 쉽게 이기기를 바랄 수 있겠느냐? 아아, 무안군(武安君·진나라 명장 백기·白起)의 마지막 한탄이 남의 일이 아니게 되었구나….)

범증의 그런 느낌은 이내 현실이 되어 나타났다. 어두운 밤 외진 곳에서 일어난 일이고, 항우도 장졸들을 단속하였으나 항우가 항복한 진나라 장졸 20만을 산 채 땅에 묻어버렸다는 소문은 마른 들판에 붙은 불길처럼 재빨리 번져갔다. 그리고 소문을 들은 진나라 군민(軍民)들은 그때부터 성문을 닫아걸고 죽을 때까지 싸우며 버티었다.

글 이문열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