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128>卷三 覇王의 길

  • 입력 2004년 4월 16일 18시 39분


20萬을 산 채 묻고 ⑩

항우는 이태 전 양성(襄城)에서도 끝내 항복하지 않고 버티던 군민(軍民) 몇천명을 산 채 묻어버린 적이 있었다. 그 뒤 항우와 맞서게 된 성읍(城邑)은 힘이 부친다 싶으면 제풀에 겁을 먹고 항복하였는데, 이번에는 거꾸로였다. 어림도 없는 군세를 가지고도 죽을 때까지 맞서 싸울 뿐 항복할 줄 몰랐다.

그 바람에 항우가 이끄는 초나라 군사들의 서진(西進)은 더욱 더뎌질 수밖에 없었다. 함곡관까지 300리 길밖에 안 된다고는 하나 크고 작은 성들이 적지 않았는데, 그것들을 하나하나 떨어뜨려 지키는 진나라 장졸들의 시체를 밟고 지나가야 하니, 50리 나아가는 데 사흘이요 100리 나아가는 데는 열흘이 걸렸다. 특히 안읍(安邑)과 섬현(陝縣)에서의 싸움은 거록(鋸鹿)에서의 피투성이 싸움을 떠올리게 할 만큼 치열했다.

원래 항우는 신안에서 바로 섬현으로 가서 그 성을 떨어뜨린 다음에 함곡관으로 치고들 생각이었다. 그러나 세작(細作)을 풀어 사방을 살피던 범증이 가만히 항우를 찾아보고 말했다.

“섬현 북쪽에 안읍이 버티고 있어 아무래도 뒤가 걱정됩니다. 듣기로 안읍에는 부근에서 맡은 땅을 스스로 지킬 힘이 없는 진나라 장졸들이 모두 모여 그 세력이 자못 크다고 합니다. 저희끼리 부풀려 말하기로는 5만 대군입니다.”

“하지만 안읍은 섬현에서 100리 길이 넘지 않소? 먼저 섬현을 치고, 안읍이 움직이면 그때 안읍을 치면 될 것이오.”

관중(關中) 길이 뜻 같지 않아 심사가 잔뜩 틀어져 있던 항우가 그렇게 퉁명스레 받았다.

“100리 길이라지만 날랜 군사로 달려오면 하룻길에 지나지 않습니다. 거기다가 섬현 또한 군세가 만만치 않다는 소문입니다. 섬성(陝城)은 함곡관의 외곽(外廓)인 셈이라 원래도 지키는 군사가 적지 않았는데, 평음(平陰) 성고(成皐)와 신안(新安)에서 쫓겨 간 군사가 더해져 지금 성안에 있는 군사만도 3만이 넘는다고 합니다.”

“까짓 3만쯤이야 우리 대군을 들어 들이치면 쉬 떨어뜨릴 수 있소. 안읍에서 우리 뒤를 엿볼 틈이 없을 것이오.”

“반드시 그렇게 볼 수만도 없습니다. 우리 군사가 30만이라고는 하나 3만의 진군(秦軍)이 성 안 백성들과 한 덩어리가 되어 성벽을 베고 죽기를 다짐하며 맞서오면 며칠 안에 성을 떨어뜨리기는 어렵습니다. 그때 안읍에서 가만히 군사를 내어 우리 등 뒤를 치면 우리는 크게 위태로워집니다. 또 코앞에 함곡관이 있어 거기서 구원이라도 나오게 되면 우리는 세 갈래로 적을 맞게 됩니다. 안읍을 먼저 떨어뜨린 뒤에 섬현으로 가야 합니다.”

이에 항우는 군사를 북쪽으로 돌려 안읍으로 갔다.

들은 대로 안읍의 군세는 5만에 가까웠다. 그것도 신안의 생매장 소문을 듣고 놀라움과 분노로 옛 진군(秦軍)의 투지를 되살린 대군이었다. 여기저기서 모여들어 급히 얽은 군사 같지 않게 짜임이 정연하고 사기마저 높았다.

항우는 항복을 권해보는 법조차 없이 대군을 들어 바로 안읍성을 치게 했다. 저편도 먹은 마음이 있어 호락호락 물러나지 않았다. 성벽을 부수면 안에서 다시 쌓고 불을 지르면 물로 끄며 악착스레 맞섰다. 그리하여 닷새나 버티다가 마지막에 항우가 몸소 앞장서 성벽 위로 뛰어올라 적장 대여섯 명을 잇따라 참살(斬殺)하고서야 성을 내주었다.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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