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이은우/“실수요자만 골탕먹어요”

  • 입력 2004년 4월 29일 18시 4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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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견기업에 다니는 C과장은 요즘 집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그가 사는 아파트는 서울 강동구 길동 S아파트 33평형. 시세는 2억3000만원 남짓이다. 지난 1년 동안 강동구의 집값이 크게 올랐으나 이 아파트는 ‘나 홀로 아파트’인 탓에 겨우 300만원 오르는 데 그쳤다.

C과장은 내달 서울 송파구 문정동으로 이사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주택거래신고제 탓에 계획이 틀어졌다. 취득세 급등으로 현재 살고 있는 아파트를 사려는 사람이 없기 때문.

그는 “취득세가 370만원에서 2000만원 남짓으로 올랐다. 가뜩이나 인기가 없는 아파트인데 누가 추가 부담을 지고 집을 사겠느냐”라고 말했다.

정부 규제가 홍수를 이루면서 선의의 피해자가 속출하고 있다.

주택거래신고제는 세금 부담이 느는 정도지만 재건축 개발이익환수제가 도입되면 재건축 자체가 무산될 수도 있어 충격이 더 크다.

대기업에 다니는 L씨는 40대로 작년 잠실 시영아파트 13평형을 샀다. 그는 현재 전세 아파트에 살고 있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자녀가 고등학교에 입학할 무렵에는 재건축이 될 것으로 판단했다. 그러나 개발이익환수제로 재건축이 어려워질까 봐 전전긍긍하고 있다.

그는 기자에게 보낸 e메일에서 “저 같은 실수요자도 투기꾼이냐”며 항변했다.

선량한 실수요자들이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정부 정책을 지켜보고 있는 반면, 부유층 투자자들은 한결 여유가 있는 것 같다.

강남에 사는 A씨는 “부자는 많고 강남은 좁다”라는 글을 보내 왔다. 시장의 수급논리를 무시한 정책은 단기 효과를 거둘 뿐이라는 주장이다.

한 부동산컨설팅업체 직원은 “지금이 오히려 기회다. 재건축 때 임대아파트 건립 의무화 등은 무리한 정책이다. 집값이 떨어질 때 투자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수요자는 빠듯한 자금 탓에 가슴앓이를 하고, 부유층 투자자는 길게 보고 여유를 갖는다. 규제 정책이 홍수를 이룰 때 그 충격은 부유층보다 실수요자에게 더 클 수 있다.

부유층 투자자와 실수요자를 정확히 구분하기는 어렵다. 또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한 곳에서는 어떤 규제든 시장 왜곡과 피해자를 낳을 수밖에 없다.

다만, 정부가 ‘무조건’ 집값을 잡기보다 시장경제의 원칙을 지킬 때 선의의 피해자도 줄어들지 않을까.

이은우기자 lib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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