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140>卷三. 覇王의 길

  • 입력 2004년 4월 30일 18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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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 줄만 남은 法 ⑩

“패공께서는 장차 천하를 얻고자 하십니까? 아니면 부가옹(富家翁)이 되어 넉넉하고 편안히 살기만을 바라십니까? 무릇 저같이 사치하고 사람의 눈을 홀리는 것들이 모두 진나라가 망한 까닭이 되었습니다. 그런 것들이 도무지 패공께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바라건대 패공께서는 어서 패상(覇上)으로 물러나도록 하십시오. 진정으로 천하를 얻으시려면 결코 궁궐 안에 머무셔서는 아니 됩니다.”

번쾌가 다시 상하의 예법을 되찾아 그렇게 말리고 나섰다. 그래도 패공 유방은 들은 척을 않았다. 여전히 무엇에 홀린 사람처럼 자신의 뜻만 호기롭게 우겨댔다.

“참으로 알 수 없는 일이다. 장차 주인 될 사람이 제 집 될 곳에 묵겠다는데 왜 아니 된다는 것인가?”

“재물을 탐내고 진기한 보물을 아끼면 큰 뜻을 상하며, 사치하고 여색에 빠지면 차지하고 있던 천하도 잃기 마련입니다. 큰 뜻을 품은 이가 자잘한 욕심에 홀려서는 아니 됩니다.”

“천하를 얻는다는 것이 무엇인가? 내 뜻에 맞게 천하를 쓰고 누린다는 뜻이 아닌가? 재물과 미인을 얻고자 천하를 차지하려 든다면 아니 될 일이거니와, 이미 천하를 얻은 뒤에 절로 얻어진 재물과 미인을 거둬들이는 것이야 무슨 허물이 되겠는가? 혹시 장군은 엄한 처형(妻兄)이 두려워 내가 미인을 품으려는 걸 막으려 드는 것은 아닌가?”

“패공, 저는 지금 사사로운 정으로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천하는 만민의 것입니다. 저는 지금 그 만민의 것을 얻으려는 자의 마음가짐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번쾌가 그래도 물러서지 않고 그렇게 버텼다. 엄한 처형이란 패공의 아내 여씨(呂氏)를 이르는 말이었다. 번쾌는 그 동생 여수(呂須)를 아내로 맞아 패공과는 동서 사이가 되었다. 사사로운 연분까지 들먹여가며 달래도 번쾌가 듣지 않자 패공은 드러내놓고 역정까지 냈다.

“장군은 처음 사인(舍人=수행관원)으로 나를 따라나선 뒤 충심으로 나를 지켜 왔다. 하지만 사람을 지킨다는 뜻은 싸움터에서 목숨을 지켜주는 일만을 말하지는 않을 것이다. 윗사람의 기거와 숙식을 편히 해주는 것도 사인의 일일 터인즉, 더는 내 뜻을 거스르지 말라!”

그렇게 잘라 말하고는 스스로 비어 있는 전각 하나를 찾아 군사들과 들어앉았다. 불우한 때는 개백정으로 난폭하게 살았으나, 번쾌는 원래가 우격다짐으로만 밀어붙이는 사람은 아니었다. 더는 패공과 다퉈 이로울 게 없다 여기고, 군사들을 풀어 장량을 찾았다.

다행히 장량은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장량이 오자 번쾌는 일의 앞뒤를 말해주고 패공을 말려주기를 당부했다. 장량이 곧 패공을 찾아보고 말했다.

“패공께서 여기까지 이렇게 오실 수 있었던 것은 진나라가 무도하였기 때문입니다. 모름지기 천하 만백성을 위하여 남아 있는 도적 떼를 쓸어버리시려면 마땅히 검소함을 바탕으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패공께서는 이제 겨우 진나라에 들어오셔 놓고 벌써 그 즐거움부터 편안히 누리려 하십니까? 그렇게 하시면 그것은 곧 이른바 ‘걸(桀)이 포학한 짓을 하도록 돕는 것[조걸소학]’이나 다름없습니다. 또 옛말에 이르기를 충성스러운 말은 귀에 거슬리지만 행실에는 이롭고[忠言逆耳利於行] 독한 약은 입에는 쓰지만 벼에는 이롭다[毒藥苦口利於病]고 했습니다. 바라건대 패공께서는 부디 번쾌의 충성스러운 말을 물리치지 말아 주십시오.”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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