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녀님 너무 아파요. 도와주세요.”
강원 춘천시 ‘성골롬반 노인전문요양원’의 한노라(본명 하노라 와이즈만·58·사진) 수녀는 간단한 진통제와 구급약을 챙긴 뒤 지체 없이 환자에게 달려갔다.
두툼한 손을 내밀고, 환자들의 말벗이 되는 게 전부지만 환자들은 “좀 빨리 오고, 자주 와야지…”라며 한 수녀를 놓아주려 하지 않는다.
아일랜드 출신으로 30년 동안 한국에서 선교 활동 중인 그는 죽음에 직면한 말기환자들이 정신적 안정을 찾아 평온한 죽음을 맞이하도록 간호하는 호스피스 활동을 16년째 해오고 있다.
아일랜드는 1815년 가난으로 결핵이 창궐했을 때 수녀들이 병원에 가지 못한 말기환자들을 위로한 일이 기원이 돼 호스피스의 원조 국가가 됐다.
간호학교를 졸업한 그는 1973년 선교 활동을 위해 ‘미지의 땅’ 한국에 왔다. 목포 성골롬반의원 간호과장으로 일하며 조금씩 ‘한국인’이 돼가던 그는 1984년부터 4년 동안 아일랜드로 돌아가 호스피스 공부를 하면서 또 다른 봉사의 의미를 깨달았다.
“나를 필요로 하는 곳에 있어야 내가 한국에 온 의미가 있다.”
1989년 춘천에 자리 잡은 그는 그때부터 말기암 환자나 병마와 싸우는 독거노인을 찾아 나섰다.
한 달에 평균 10여명, 16년 동안 그의 간호를 받다 죽은 환자들만 2300여명.
“호스피스라는 말 대신 ‘가정간호’라는 말을 써요. 환자와 그 가족들이 호스피스를 죽음이라는 불길한 의미와 연결시키기 때문이죠. 사실 호스피스는 말기암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고 남은 시간을 뜻 깊게 쓰도록 돕는 활동일 뿐입니다.”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 때 ‘환란(換亂)’은 그에게 커다란 충격이었다. 가족들에게 부담이 가지 않게 안락사 시켜달라는 환자들이 적지 않았다.
“노인뿐 아니라 젊은 사람들도 호스피스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꼭 전문 호스피스센터를 세워 외롭게 죽음을 맞는 모든 환자들의 벗이 되고 싶습니다.”
그는 입버릇처럼 말한다.
“한국은 지구상의 어느 국민보다 가슴이 따뜻하고 유쾌한 사람들이 많이 사는, 내가 본 가장 멋진 나라입니다.”
그러면 주위 사람들이 한결같이 하는 말이 있다.
“수녀님 같은 분이 있어 더욱 멋진 나라이지요.”
정원수기자 needjung@donga.com
김상훈기자 sanh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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