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장만 보면 국산 17년산 슈퍼프리미엄급 위스키였으나 내용물은 수돗물과 저급 리큐어, 공업용 알코올 색소 향료 등을 섞은 가짜였죠. 포장만 보고 가짜를 구분하기는 힘들더군요.
문제는 이날 적발된 3000여병이 모두 한 회사의 제품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제품 실명이 보도되면 이미지가 나빠져 매출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적발된 ‘모조품’의 진짜 제품을 만드는 회사 관계자의 말입니다.
“이런 식으로 발표하다니 억울합니다. 앞으로 다른 회사 제품도 적발될 수 있지 않습니까. ‘가짜 양주 신고포상제’의 포상금도 주류업체가 내는 돈으로 주는 것인데….”
이 회사는 국세청의 ‘거침없는’ 발표 때문에 속으로 앓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좋은 뜻으로 신고포상제에 참여해 포상금을 내놓았지만 그 제도 때문에 자신들의 이미지가 나빠질 수 있었기 때문이죠.
그렇다고 주류업체가 국세청에 하소연할 수 있는 처지도 아닙니다. 국세청이 주류사업과 관련한 각종 허가권을 갖고 있기 때문이죠.
아무튼 이날 해당 제품은 A신문에서는 ‘고급 양주’로, B신문에서는 실명으로 보도됐습니다. 방송화면에서는 제품이 뿌옇게 처리됐더군요.
가짜 양주의 유통 특성상 내부 고발자의 제보가 없으면 적발하기 어렵다는 게 국세청의 설명입니다. 신고포상제를 운영하는 이유입니다.
국세청은 신고포상제가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나자 포상금을 더욱 올리기로 했습니다. 포상금이 올라가면 단속은 한층 탄력을 받겠죠.
하지만 이번 발표 과정에는 몇 가지 석연치 않은 구석도 있습니다.
국세청이 남의 돈으로 생색내는 것은 아닌지, 자신의 공적만을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또 국세청과는 항상 ‘을(乙)’ 관계일 수밖에 없는 주류업체가 ‘덤터기’를 쓰는 것은 아닌지 등등 말입니다.
차지완 경제부기자 c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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