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세의 평범한 가장 나카하라 히로시. 그는 출장을 다녀오는 길에 어머니의 유골을 모신 절에 들렀다가 잠시 정신을 잃는다. 깨어나 보니 14세였던 중학교 2년 시절로 돌아와 있다.
일본 만화가 다니구치 지로(57)의 ‘열네 살’(샘터)이 한국에서 번역 출간됐다. 모두 2권으로 된 이 작품은 일본에서 1997년 발표됐고, 2003년 프랑스 앙굴렘 국제만화페스티벌에서 ‘최우수 시나리오상’을 받았다.
다니구치는 작가주의 만화가로 한국에선 낯선 작가다. 삶에 대한 통찰을 담은 작품으로 일본보다 예술만화의 전통이 강한 유럽에서 더 인정받고 있다. 대표작으로는 ‘해결사 가업’ ‘도련님 시대’가 있으며 한국에서 번역 출간된 작품은 산악만화 ‘K’에 이어 ‘열네 살’이 두 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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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네 살’에서 34년 전으로 돌아온 나카하라는 48세의 기억을 간직한 채, 중학교 학창시절을 보낸다. 비즈니스를 위해 익혔던 영어로 급우들의 기를 죽이고 반에서 가장 예쁜 여학생과 사귄다. 이는 34년 전 겪지 못했던 일들이다.
그러나 나카하라는 아버지의 가출을 막아야할지를 두고 고민한다. 34년 전 성실한 가장이었던 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가출했다. 이 사실을 아는 나카하라가 이번에 아버지의 가출을 막을까.
한편 나카하라는 꿈에서 현실세계의 가족을 본다. 둘째 딸은 “아빠 같은 술꾼과 결혼하지 않을 것”이라고 하고, 맏딸은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결혼 상대를 골랐다. 나카하라에겐 모두가 생소할 뿐이다.
이 만화의 그림체는 과장이 없다. 작은 사물의 그림자나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빛의 편린 등 섬세한 배경은 옹골찬 작가주의의 면모를 풍긴다.
소설가 이순원씨는 이 작품에 대해 “구성이 탄탄한 한 편의 소설 같다. 만화도 이토록 긴 여운을 줄 수 있다는 점을 실감했다”고 평했다.
만화평론가 이명석씨는 다니구치에 대해 “독창적 상상력을 발휘하면서도 리얼리즘의 기조에서 어긋나지 않는다”며 “그의 작품은 아시아적 색채를 강렬하게 지녔으면서도 세계적 보편성을 획득했다”고 말했다.
조경복기자 kathy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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