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143>卷三. 覇王의 길

  • 입력 2004년 5월 4일 18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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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박순철
그림 박순철
鴻門의 잔치 ①

서북 땅의 동짓달은 겨울도 엄동이었다. 그 동짓달도 상순이 다 가도록 항우는 아직도 섬성(陝城)에 붙들려 있었다. 성안의 진나라 장졸들이 워낙 완강히 버티는 탓이기도 했지만, 개운치 못한 뒤를 쓸어버리기 위해 저희 군사를 이곳저곳 갈라 보낸 것도 쉽게 성을 떨어뜨리지 못한 까닭이 되었다.

맹장인 경포와 포장군은 군사 5만을 이끌고 북쪽으로 올라가 안읍(安邑)을 되찾고 평양(平陽)까지 쓸어버리고 있는 중이었다. 또 다른 맹장 용저와 환초는 남양(南陽)으로 내려가 그 일대를 평정하고 있었는데 그들이 이끌고 간 것도 가려 뽑은 군사로 3만이 넘었다. 그렇게 되니 항우의 대군이 30만이라고는 하나 제대로 싸울 군사는 절반도 안 남은 셈이라, 눈보라로 얼어붙은 겨울 공성전(攻城戰)에 그리 넉넉한 전력이 못되었다.

“아무래도 아니 되겠습니다. 이러다가는 겨울이 다 가도 관중에 들지 못할 것입니다.”

어느 날 범증이 항우를 찾아보고 그렇게 말했다. 항우가 답답한 듯 받았다.

“그러니 어찌하겠습니까? 성은 저렇듯 완강히 버티고 우리 군사는 등 뒤를 깨끗이 하느라 적잖이 나가 있으니….”

“이렇게 해보는 게 어떻겠습니까? 오늘부터 남은 군사를 모두 일으켜 섬성을 급박하게 들이치되, 이전과는 달리 동 남 북 삼면만 에워싸고 서문 쪽은 열어두는 것입니다.”

“그러면 적이 그리로 달아나 다시 후환거리가 되지 않겠습니까?”

항우가 여전히 떨떠름한 얼굴로 받았다. 범증이 그런 항우를 달래듯 말했다.

“지금 저들이 이토록 모질게 버티는 것은 우리가 신안(新安) 남쪽에서 항졸(降卒) 20만을 산 채 묻어버린 일 때문일 것입니다. 항복해 봐야 죽기는 매한가지니 싸우다 죽겠다는 뜻이니, 차라리 한 가닥 살 길을 열어주어 저 성부터 쉽게 얻는 것도 좋은 계책이 될 듯합니다. 더구나 들리는 소문으로 미루어, 이제 더는 이곳에 묶여 있어서는 안 될 듯합니다.”

“그건 또 무슨 말씀입니까?”

“무관(武關)을 넘은 유방이 다시 요관(嶢關)을 깨뜨리고 남전(藍田) 골짜기를 지나 패상에 이르렀다는 소문입니다. 패상은 함양을 코앞에 둔 곳이라 오래 시일을 끌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릅니다. 만일 썩어빠진 진나라 조정이 제대로 싸워보지도 않고 유방에게 넙죽 항복이라도 해버리면 모든 공은 유방에게로 돌아가 버리고 맙니다.”

그 말에 항우도 다급해진 모양이었다. 후끈 달아오른 얼굴로 목소리를 높였다.

“유방 그 건달 놈이 감히…. 알았소. 군사의 말씀대로 어서 섬성을 깨뜨리고 입관(入關)을 서두르도록 하겠소.”

그리고는 그날부터 섬성을 들이치는데, 서문 쪽은 비워두고 동 남 북 세 곳만 짐짓 매섭게 들이치기를 이틀이나 거듭했다.

겉으로는 굳건해 보여도 이미 보름 넘게 시달린 뒤라 섬성 또한 더 버틸 힘이 남아 있지 않았다. 거기다가 지난 이틀 동안의 공성에서 서문 쪽이 열려 있는 곳을 보자 성을 지키던 진나라 장졸들의 마음도 달라졌다. 범증이 헤아린 것처럼, 서쪽으로 달아나 험하기가 네 관(關) 가운데 으뜸인 함곡관에서 다시 한번 싸워보기로 작정했다.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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