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지금 중국인가]<下>美 "파트너인가 라이벌인가"

  • 입력 2004년 5월 5일 18시 47분


《“9·11테러 이후 3년간 미국과 중국의 관계는 최상의 상태(at its best)를 지속해 왔다.” 정치적 노선을 불문하고 동아일보의 전화 인터뷰에 응한 워싱턴의 아시아 전문가들은 미중 관계의 오늘을 이렇게 평가했다. 그러나 최근 미국에서는 대(對)중국 정책을 다시 검토해야 한다는 논의가 불거져 나오고 있다. 외교전문지 포린어페어스 최신호에 중국에 대한 ‘포용정책을 깨지 말라(Don’t Break the Engagement)’는 글을 기고한 엘리자베스 이코노미 미 외교협의회(CFR) 아시아담당 소장은 “최근 3년간의 고요함을 깨고 미국의 대중국 정책에 대한 논란이 다시 뜨거워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미국에 과연 중국은 어떤 나라인가.》

▽‘견고한 세 다리 의자’=“미중 관계는 견고한 세 다리 의자와 같다.”

존스홉킨스 국제관계대학원 중국학 연구소장 데이비드 램튼 교수는 현재의 미중관계를 이렇게 비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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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 당시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 외교관계를 수립했던 것과는 달리 이제 양국관계는 안보, 경제, 문화라는 세 개의 다리가 마치 ‘솥발’(鼎)처럼 떠받치고 있다는 뜻이다.

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은 지난해 9월 조지워싱턴대 연설에서 “미중 관계는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의 중국 방문 이후 최고 수준”이라고까지 말했다.

양국의 접촉 또한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하다. 9·11테러 이후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은 무려 6차례나 중국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공동목표에 합의한 양국은 정보교류 및 협력체제도 가동시켰다. 베이징에는 미 연방수사국(FBI) 사무소가 들어섰다. 중국은 부시 행정부가 주도하는 CSI(Container Security Initiative·대량살상무기 확산 방지를 위한 컨테이너 화물 검색체제)에도 공식 가입했다.

중국이 북핵 문제의 중재 역할에 적극 나서면서 양국간 관계는 더욱 긴밀해졌다.

2차 베이징 6자회담에 참석했던 미 행정부 당국자는 당시 분위기를 이렇게 전했다. “때론 중국이 북한보다 우리측과 더욱 깊은 교감을 나누는 것 같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단순히 미국을 의식한 ‘연기’라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양국의 가장 민감한 현안인 대만 문제 또한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는 분석이다.

부시 대통령은 작년 말 원자바오(溫家寶) 총리의 미국 방문 때 대만의 독립움직임에 반대한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중국의 ‘전략적 중요성’을 우선시한 발언이었다.

부시 행정부의 대중전략기조는 2002년 9월 발표한 국가안보전략 보고서에 극명하게 명시돼 있다.

“미국은 강력하고 평화적이며 번영하는 중국의 부상을 환영한다.”

▽다시 불거지는 중국 경계론?=그러나 이는 부시 행정부의 진심이 아니며 중국 경계론은 언제든 부상할 것이라는 전망이 새삼스럽게 다시 제기되고 있다.

사실 부시 대통령은 미중관계를 ‘건설적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규정했던 빌 클린턴 전 행정부와는 달리 중국을 ‘전략적 경쟁자’(2000년 대선 캠페인 당시)로 규정했다.

2001년 4월 양국 관계를 긴장시킨 남중국해 상공에서의 미 정찰기와 중국 전투기의 충돌사건은 부시 행정부의 중국 인식을 확연하게 보여준 사건이었다. 이 사건은 증대하는 중국의 군사활동을 견제하기 위해 정찰활동을 강화해 발생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빅터 차 조지타운대 정치학과 교수는 “미 행정부 내 강경론자들은 결코 ‘중국의 부상’을 환영하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이들은 과거 로마나 대영제국이 잠재적 경쟁자를 경시하다 멸망했던 전철을 결코 밟아서는 안 되며 국제사회의 유일한 슈퍼파워는 미국밖에 없다고 믿고 있다”면서 “중국이 바로 이들이 생각하는 ‘잠재적 위협’”이라고 설명했다.

중국 경계론은 이미 수면위로 떠올랐다는 분석도 있다.

프랭크 개프니 미 안보정책센터 이사장은 최근 ‘우리가 무시하고 있는 위협’이라는 제목의 워싱턴타임스 기고문에서 “미국은 클린턴 전 대통령 시절부터 11년간 무섭게 커진 또 하나의 위험에 직면해 있다”며 “그것은 초강대국이 돼 미국과 경쟁하려는 공산주의 중국”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CFR의 이코노미 소장도 “2004년은 강경론자들이 대중국 포용론에 대해 비판의 기치를 올리는 해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미중 관계의 미래=중국 경계론은 일단 11월 미 대선 때까지 속속 수면위로 떠오를 것이라는 시각이 많다. 그러나 본질적인 미국의 대중국 정책 변화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데이비드 스타인버그 조지타운대 아시아센터 소장은 “강경론자들의 중국 견제론은 새로운 뉴스가 아니다”면서 “대선 때마다 불거지는 외교정책 논쟁의 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차 교수는 “협력 속에서도 견제가 공존하고, 양국간 문화적 차이도 크지만 중요한 점은 양국 모두 실리를 추구하는 현실주의자들이라는 점”이라며 “총체적으로 양국간 우호관계는 상당 기간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정안기자 credo@donga.com

워싱턴=권순택특파원 maypole@donga.com

▼중국이 보는 한국▼

“중국인들은 한국을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2개의 한국을 원한다고 말한다.”

중국의 한 조선족 학자는 한국을 보는 중국인들의 ‘야누스적 심리’를 이렇게 표현했다. 국익의 관점에서 볼 때 남북한 모두 중국으로서는 버릴 수 없는 존재라는 이기적 의미가 내포돼 있다.

1992년 8월 한중수교 이후 중국의 한반도 이익 개념이 북한보다는 한국에 경사되는 비대칭성이 심화되어온 것은 사실이다. 한국의 경제적 가치가 중국의 대외정책 조정과정에 미치는 영향력은 갈수록 탄력을 받고 있고, 한류(韓流)로 불리는 문화적 영향력도 일반 중국인들의 심리를 깊숙이 파고들었다.

이를 반영하듯 양국은 지난해 7월 노무현(盧武鉉) 대통령 방중시 ‘전면적 협력 동반자 관계’를 맺었다. 중국식 개념으로는 전 세계적 범위의 ‘전략적 동반자 관계’ 다음으로 좋은 관계로 격상된 셈이다.

하지만 한국이 중국의 대외정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는 추세라고 해서 북한의 이념적 정치적 전략적 가치가 소멸되는 것은 아니다. 지난달 19일 방중한 김정일(金正日) 북한 국방위원장을 극진히 환대한 것이 그 증거이다.

중국의 한 소장학자는 “북한은 중국에게 귀찮은 이웃으로 전락했지만 의식의 변화가 정책의 변화로 이어지지는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반 중국인들의 한국에 대한 인식도 다분히 이중적이다.

‘대한견국(大韓犬國).’ 2002년 6월 월드컵 때 중국 최고의 명문 베이징(北京)대 인터넷 게시판에 오른 글이다. 당시 중국 언론 대부분은 한국의 선전에 대해 ‘월드컵의 치욕’이라며 극단적인 혐한(嫌韓) 정서를 드러냈다.

한 중국 전문가는 이를 “중국인의 부정적 기질인 홍안병(紅眼病)이 발동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다른 사람이 성공하면 질투와 시샘을 넘어 흠집을 내야 직성이 풀린다는 것이다.

그 이면에는 뿌리 깊은 중화사상과 대국주의가 자리 잡고 있다. 중국에 붙어있는 소국(小國)이 자신들보다 잘하는 것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서울에서 볼 것은 한강밖에 없더라.” 중국 경제가 눈부시게 발전하면서 한때 중국인들이 선망해 마지않았던 ‘한강의 기적’을 폄훼하는 목소리도 최근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중국전문가들은 “중국의 얼굴을 입체적으로 봐야 하는데 최근 한국에서는 자신들에게 유리한 면만 보려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한국을 중화질서의 일부로 여기는 심리와 중공군의 6·25전쟁 참전, 월드컵에서의 한국 비하 등을 냉정한 평가 잣대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베이징=황유성특파원ys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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