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돌막재 경사면 양쪽으로 납작한 화강편마암들을 겹겹이 쌓아올린 돌무지들이 떼로 보였다. 일부는 허물어 내렸지만 대부분 처음 쌓인 형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돌무지는 한결같이 야트막한 봉분(封墳) 위에 쌓여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일부 봉분의 경우 돌더미는 거의 허물어졌지만 봉분 형태는 뚜렷했다.
동행한 건국대 최무장 교수는 “지표면에 관을 놓고 봉분을 쌓은 뒤 그 위를 다시 돌로 덮는 고구려 적석봉토분(積石封土墳)이 틀림없다”고 말했다.
돌막재 안쪽으로 좀더 들어가자 지금껏 본 봉분 형태와는 달리 무덤 입구로 보이는 구조가 갖춰진 돌무지가 눈에 띄었다. 최 교수는 “이는 관 주변에 돌을 쌓아 석실을 만든 뒤 봉토를 쌓는 봉토석실분(封土石室墳)으로 추정된다”며 인근에서 고구려 항아리로 추정되는 경질(硬質) 토기 파편이 함께 수습됐다고 설명했다.
고구려 토기는 대부분 견고한 경질로 입구가 바깥으로 많이 휘어 있고, 가로로 깊이 패인 심선(深線)이 뚜렷하며, 손잡이가 달려있는 것이 특징. 이번에 수습된 토기파편도 회청색 경질 토기로 주둥이 부분이 바깥으로 많이 휘어져 있고, 심선이 뚜렷하며, 파편 중 일부에서 손잡이 흔적이 발견돼 고구려 양식을 뚜렷이 보여주었다.
그간 남한에서 고구려 고분이 확정적으로 보고 된 사례는 없다. 고구려 양식의 무덤이 1, 2기씩 보고 되긴 했지만 부장품이 발굴된 경우가 없기 때문이다.
횡산리 무덤들은 고구려 토기로 추정되는 유물이 함께 출토된 데다 돌막재에서 확인된 30기를 포함해 최소 300기가 넘는다는 점에서 지금까지 남한에서 발견된 최대규모의 고구려 고분군이 될 가능성이 높다.
고구려 고분군에서 남쪽으로 약 1km 내려가면 임진강변에 7만평 가량의 인삼밭이 나온다.
주변에 경지작업이 한창인 이곳에서는 구석기시대 타제석기의 재료인 몸돌(石核)이 일반인의 육안으로도 확인할 수 있을 만큼 여기저기 널려 있다. 몸돌은 찍개, 주먹도끼, 칼날 등의 재료가 되는 돌이다.
최 교수는 “지난해 말부터 이곳에서 육안 지표조사만으로 300여점의 구석기 유물을 발굴했다”고 밝혔다.
이 중에는 전기 구석기의 대표적 유물인 외날찍개 7점과 양날찍개 3점, 중기 구석기의 대표적 유물인 주먹도끼 13점, 작은 도끼 4점 등이 포함돼 있다.
또 몸돌 주변을 일정크기로 잘라내면서 중앙의 비교적 큰 석편을 제거한 거북이등 형 몸돌도 국내에선 처음으로 발견됐다. 서울대 임효재 교수는 “전기부터 중기까지 구석기 유물들이 고르게 분포한다는 점에서 전곡리 유적만큼 중요한 유적지다”라고 평가했다.
연천=권재현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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