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개원한 이 병원 김남철 원장(35)은 “365일간 밤 12시 무렵까지 문을 여는 동네의원은 몇 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다”며 “환자들이 감기에 걸려도 중이염이나 폐렴 등 합병증이 생겨야 병원을 찾을 정도로 불황이어서 연중무휴 진료를 결정했다”고 말했다.
최근 서울대병원 피부과에서 진료를 받은 L씨는 의사에게 부탁해 3개월치 약을 처방받았다. 이 병원 피부과 K교수는 “가급적 병원에 오는 횟수를 줄이려고 한꺼번에 많은 약을 처방받으려는 사람들이 급증했다”고 밝혔다.
내수 불황은 안정된 소득이 보장되던 전문직에도 예외가 아니다. 의사, 변호사, 건축사, 동시통역사, 세무사, 공인중개사 등 분야에 관계없이 타격을 받고 있다.
이규원 세무사는 “전문서비스업 경기는 경제의 활력과 건강성을 가늠할 수 있는 척도”라며 “내수 침체가 구조적이어서 상당기간 회복될 것 같지 않다”고 우려했다.
14일 오전 서울 강남구 서초동 ‘법조타운’ 앞에는 ‘임대’ 플래카드가 곳곳에 걸려 있었다. 2, 3개의 변호사 사무실을 하나로 합치거나 다른 데로 떠나는 일이 급증했기 때문.
J변호사는 “돈이든 부동산이든 거래가 이뤄지지 않는데 소송할 일이 있겠느냐”며 “사무실 유지도 힘든 변호사들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서초동 법조타운의 사무실 임대료는 올해 들어 10% 하락했다.
서울지방변호사회에 따르면 올해 들어 4월까지 겸직 허가를 받은 회원은 119명. 작년 한해 165명의 70%를 넘어섰다. 작년까지는 기업체에도 임원급으로만 갔으나 올해 들어서는 대리도 좋다는 사람이 많아졌다. 고시학원 강사 등을 하겠다고 겸직을 신청한 변호사도 5명 있었다.
건축사와 공인중개사들은 줄줄이 사무실을 축소하거나 폐쇄하고 있다.
건축 규제와 불황이 맞물려 건설경기가 냉각됐기 때문. 이 때문에 시공, 설계, 분양, 중개, 이사 등 관련 분야가 총체적 침체를 맞고 있다.
오퍼스 건축설계사무소 우대성 사장은 “올해 들어 업계 전체의 일감이 30∼50% 줄었다”며 “사무실을 폐쇄하고 재택근무를 하는 사례도 많다”고 소개했다.
서울 강남의 L건축사는 “예년에는 5∼10건을 설계했지만 올해는 일을 한 건도 맡지 못했다”며 “외환위기 때와 비슷하다”고 말했다.
공인중개사 업계는 폐업이 급증하고 있다. 작년 한 해 동안 폐업한 부동산중개업소는 2만1221곳으로 전체 중개업소의 30%에 달했다. 올해 들어 4월까지는 이미 5000건에 육박했다. 현도컨설팅 임달호 사장은 “신규 분양, 매매, 전세 등을 가리지 않고 흐름이 끊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동시통역사들은 투자 위축 등 기업 활동이 침체하면서 일감이 줄었다. 경력 5년의 동시통역사 A씨는 “설비투자를 할 때 외국 기술진과 국내 직원간의 통역이 주된 업무였으나 최근 6개월째 일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동시통역사들의 수입이 최근 1, 2년 새 절반 수준으로 감소했다”고 말했다.
매년 초 증권가를 달구던 애널리스트 스카우트 경쟁도 올해는 잠잠하다. 억대 연봉을 받는 한 애널리스트는 “예전에는 직장을 옮겨 몸값을 불릴 생각을 했지만 요즘은 자리를 지키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말했다.
이은우기자 libra@donga.com
박 용기자 par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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