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156>卷三. 覇王의 길

  • 입력 2004년 5월 19일 18시 4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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鴻門의 잔치 ⑭

“서로 사정을 몰라서 일이 뒤틀린 듯하오. 우리가 아는 것은 모두 패공의 좌사마(左司馬) 조무상(曹無傷)이 말해준 것이오. 그 말이 아니었던들 일이 여기까지 이르기야 했겠소! 걱정하지 말고 오랜만에 술이나 한 잔 나눕시다.”

그렇게 말하고 호탕하게 웃은 항우는 패공 유방을 데리고 잔칫상을 벌여둔 곳으로 이끌었다. 범증은 항우가 조무상의 이름을 밝힐 때 하도 어이가 없어 크게 한숨을 내쉴 뻔하였다.

(오늘 유방이 죽지 않으면 반드시 조무상이 죽겠구나!)

하지만 다행히도 항우가 패공을 술자리로 이끄는데 그래도 한 가닥 기대를 남겼다. 패공이 자신들의 진채에 남아있는 한 죽일 수 있는 기회도 남아있기 때문이었다.

술자리에 이르러 항우와 항백은 동쪽으로 향해 앉고, 장량은 맞은편에서 서쪽을 향해 앉았다. 범증은 남쪽을 향해 앉고 패공은 그 맞은편에서 북쪽을 향해서 앉았다. 당상(堂上)이 따로 있지 않은 자리는 동쪽을 향하는 것이 가장 귀하다 하였으니 대강 그들의 자리매김이 어떠한지를 잘 보여주는 배석이었다.

패공과 술잔을 주고받는 항우는 유쾌하기만 했다. 거록(鋸鹿)의 싸움과 장함에게서 항복을 받아내고 함곡관을 깨뜨리던 일을 스스로 되돌아보기도 하고 패공의 전력(戰歷)을 묻기도 하며 거듭 술잔을 권했다. 그게 항우였다. 자신에게 맞서는 자에게는 잔혹하다할 만큼 엄격했지만, 깨끗하게 승복하고 허리를 굽히면 얼마든지 너그럽고 정을 쓸 줄도 알았다.

한편 패공과 마주 앉은 범증은 시간이 흐를수록 애가 탔다. 때로는 커지고 때로는 작아지며, 굽힐 때 굽히고 펼 때 펴 항우의 허영심을 채워주고 비위를 맞추는 패공 때문이었다. 반드시 죽이지 않으면 장차 항우에게 큰 걸림돌이 될 것이라 보아, 몇 번이나 항우에게 옥결(玉결)을 들어 보이며 암시를 주었으나 항우는 번번이 못 본 척 패공에게 손을 쓰려 하지 않았다.

마침내 항우의 손을 빌리기를 단념한 범증은 슬그머니 술자리를 빠져 나와 항장(項莊)을 불렀다. 항장은 항우의 종제(從弟)로서 초나라 맹장(猛將) 가운데 하나였다.

“주군(主君)께서 사람됨이 모질지 못하니 장군은 안으로 들어가서 축수(祝壽)를 올리고는 칼춤 추기를 청하라. 반드시 주군의 허락을 받아내어 칼춤을 추되, 때를 보아 패공을 앉은 자리에서 쳐 죽여 버려라. 오늘 패공을 죽이지 못하면 장군들은 모두 장차 반드시 패공의 포로가 되고 말 것이다.”

항장을 구석진 곳으로 가만히 데려간 범증은 목소리를 낮추어 그렇게 말했다. 항장이 그리 미욱한 사람이 아니라 금세 범증의 말을 알아들었다. 곧 술자리로 들어가 항우에게 축수를 올리고 말하였다.

“군왕께서 패공을 모시고 술잔치를 벌이시는데 군중이라 그런지 취흥(醉興)을 돋울 만한 것이 없습니다. 제가 솜씨 없으나 칼춤으로 한바탕 취흥을 돋우고자 하는데 허락해 주시겠습니까?”

얼큰히 취해 가던 항우가 속 모르고 웃으며 그 청을 받아주었다.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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