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0년 동안 호텔 경영에 몸담아 온 나는 세계의 다양한 호텔들을 둘러볼 기회가 많았다. 나라마다 호텔을 평가하는 시각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한국에서 호텔 수준은 객실 규모, 로비 크기, 최첨단시설 보유 정도 등에 따라 결정된다. 반면 내가 태어난 독일을 비롯한 유럽 국가들에서는 호텔이 가진 역사와 전통을 가장 중요한 등급 기준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1980년대 후반 내가 근무했던 스위스의 한 호텔에는 손님이 직접 문을 여닫는 80여년 된 엘리베이터가 그대로 운행되고 있었다. 그 호텔은 고급 호텔임에도 불구하고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가 방문했을 때 사용했던 엘리베이터였다는 사실을 자랑스러워하며 낡고 삐걱거리는 엘리베이터를 고수하고 있었다. 손님들은 처칠 총리가 사용했던 엘리베이터라는 직원의 설명을 듣고 엘리베이터를 만지며 신기해하는 모습이었다. 조금 더 빠른 속도와 세련된 겉모습을 위해 신식 엘리베이터로 바꿨더라면 아마 손님들에게 이런 즐거움을 제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서울에는 세계적인 수준의 시설을 갖춘 호텔들이 많지만 한국 고유의 모습을 간직하고 한국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호텔은 거의 없다. 전통 기와집의 따뜻한 온돌방과 정원을 갖춘 마당은 숙박시설로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할 터이지만 이런 좋은 유산은 ‘신식 문화’ 앞에 자취를 감춰버린 것 같아 안타까울 때가 많다.
새 것을 선호하는 현상은 한국 길거리에서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한국에선 유독 신형 자동차의 비율이 다른 나라에 비해 높다. 지금 한국 도로를 보면 내가 처음 서울에 왔던 1990년대 초의 자동차 모델을 찾기 힘들 정도다. 외제 자동차의 경우도 마찬가지여서 한국에 있는 외제차 중 5년 전의 모델을 찾기란 쉽지 않다.
나는 비록 한국인은 아니지만 13년 동안 살아 온 한국을 ‘제2의 고향’이라고 생각한다. 오랫동안 이곳에 살면서 외국인들이 많이 몰리는 경복궁과 덕수궁 같은 대표적인 관광지보다는 많이 알려지지 않은 나만의 공간을 찾아가서 가끔씩 기분전환을 하곤 한다. 그러나 점점 높아져 가는 빌딩 숲 사이로 한국만의 냄새가 배어나고 운치를 자아내는 곳들이 점점 사라져 가는 것 같다.
새 것도 내일이면 헌 것이 된다. 하루만 가치 있는 새 것에 욕심내기보다 훨씬 많이 남아 있는 옛 것을 아끼는 것이 더 바람직하지 않을까.
버나드 브렌더 서교호텔 총지배인
약력 : 1945년 독일 오버뮌스터탈에서 태어나 67년 바드라이첸홀 호텔학교를 졸업한 뒤 줄곧 호텔업계에서 일해 왔다. 91년 한국에 와서 쉐라톤워커힐호텔, 웨스틴조선 호텔의 총지배인을 거쳐 2003년부터 서교호텔 총지배인으로 일하고 있다. 자신의 외국생활 경험담을 모아 98년 ‘The Road Home’이라는 저서를 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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