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마당]김홍배/교통신호등 위치부터 바꾸자

  • 입력 2004년 6월 6일 18시 24분


자동차의 정지선 위반 행위에 대해 집중 단속이 실시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2003년 현재 인구 100만명당 교통사고 사망자가 169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 가장 높다. 정지선 단속이 우리나라 운전자들의 운전습관과 보행자들의 안전수준을 한 단계 높여 ‘교통사고 사망률 최고’라는 불명예를 벗을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나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모든 교통사고 문제가 운전자의 운전습관과 낮은 교통질서의식에만 기인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교통사고 상황이 이렇게 되기까지는 다양한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겠으나 가장 기본적인 것은 교통신호등의 부적절한 위치와 교통시설 운용방법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이를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보자. 먼저 교통신호등이 운전자의 정지선 준수를 유도할 수 있는 곳에 위치해야 한다. 예를 들면, 독일의 경우 교통신호등이 정지선과 매우 근접한 곳에 있다. 따라서 만일 자동차가 정지선을 넘어 정지하면 그 운전자는 신호등을 볼 수 없어 불편을 느끼게 된다. 이런 불편 때문에 독일의 운전자들은 정지선을 지키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교통신호등 위치부터 운전자들의 바른 운전습관을 유도하고 보행자의 안전을 향상시킬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는 얘기다. 참고로 독일의 교통사고 사망자는 2000년 인구 100만명당 95명이다.

보행신호등의 합리적인 운용도 운전자들의 운전습관과 교통질서의식을 높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보행자가 전혀 없는 시간이나 장소에 보행신호등을 작동해 불필요하게 차량의 흐름을 막는다면 이는 운전자로 하여금 교통법규를 위반하게 만드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사람 없는 횡단보도에서 운전자는 정지할 이유를 잘 못 느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적이 드문 길이나 심야시간에는 무조건 일정시간 간격으로 횡단보도 신호를 줄 것이 아니라 보행자가 스스로 횡단보도 신호를 점멸하도록 하는 방식으로 신호체계를 바꿔줄 필요가 있다.

교통시설이 합리적으로 운용되지 않을 때 운전자들은 교통규칙에 대해 근본적인 불신을 갖게 된다. 이러한 불신의 문제는 바로 운전자들이 법규 위반에 대해 무감각해지고 더 나아가 법을 지키는 것이 오히려 손해라는 생각에 이르게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심각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작은 것을 지키게 될 때 큰 것도 지킬 수 있으며, 반대로 작은 것에 대한 위반이 계속될 때 큰 것에 대한 위반도 쉽게 이뤄짐을 알아야 한다. 기본적으로 교통시설은 모든 운전자가 상식적으로 수긍할 수 있도록 운용돼야 한다.

교통사고 문제를 운전자들 탓으로 몰기 이전에 경찰청은 운전자들이 교통법규를 위반하지 않도록 장기적이면서도 근본적인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 그리고 그 대책에는 교통신호등의 적절한 위치 선정과 배치, 교통시설의 합리적인 운용 방안이 포함돼야 한다. 이런 대책이 구체적으로 실현될 때 우리는 교통사고 사망률 최고 국가라는 오명을 씻을 수 있을 것이다.

김홍배 한양대 교수·도시공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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