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미군 감축 놓고 한미 신경전 양상

  • 입력 2004년 6월 8일 17시 36분


미국 정부의 '주한미군의 대규모(1만2500명) 조기(2005년말까지) 감축' 통보에 허를 찔린 한국 정부가 8일 "미국안은 일방적 통보도 아니고, 최종안도 아니다"며 총반격에 나섰다.

그러나 정부 내부에서조차 이에 대해 "주한미군 감축 협상이 동맹국 간의 '건설적 협의'보다 '감정적 협상'으로 번질까 우려 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인가="'주한미군 2007년부터 감축될 것'이라고 말한 정부의 고위당국자가 누구입니까. 왜 그런 '바보 같은' 발언을 한 것입니까."

정부의 한 관계자는 이날 이같이 한탄했다. 한국 정부의 이런 희망사항(2007년부터 감축 시작)이 공개된 뒤, 미국안(2005년말까지 감축 완료)이 통보되면서 한미 간 이견만 불필요하게 크게 부각되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것이다.

한미관계 전문가들도 "한미동맹의 '안보 시간표'가 엇나가고 있음이 공개되면서 한국 정부가 미국의 속내를 전혀 모를 정도로 무능했거나, 미국 정부가 한국 입장을 완전 무시할 정도로 오만했다는 식의 부정적 이미지만 낳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국가안전보장회의(NSC)는 이날 보도자료를 내고 "대미 협의 결과를 공개한 것은 국민의 알 권리 차원"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정부 일각에선 "동맹국간 충분한 '사전 협의'도 없는 상태에서 이처럼 중요하고 민감한 안보 현안에 대한 양국의 '기본 입장'이 모두 공개된 것은 이례적인 일"이라며 의아해했다.

이와 관련해 권진호(權鎭鎬) 대통령국가안보보좌관은 이날 "양국 간 비공식 사전협의는 전혀 없었다"고 확인했다.

▽감축 시기 연기 가능할까=여권의 한 핵심관계자는 "'2005년 말까지'는 한국이 주한미군 1만2500명의 안보 공백을 메우기엔 '매우 짧은 시간'이지만, 그 감축을 위한 협상을 하기엔 '상당히 긴 세월'이다"고 말했다.

북한의 갑작스런 무력 도발 같은 한반도 안보 상황이나 미국 대선 같은 양국의 국내정치적 상황에 따라 주한미군 감축 시기나 규모에 변화가 올 수 있다고 이 관계자는 덧붙였다.

그러나 도널드 럼즈펠드 미 국방장관은 미 대선(11월) 전에 '해외주둔미군 재배치 검토'(GPR) 계획을 사실상 완료하는 성과를 기대하고 있고, 이라크 상황이 악화하면 GPR 실행이 더욱 앞당겨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실정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미국 전문가는 "'2005년말까지 감축 완료'라는 미국안은 한국 정부가 그대로 수용하기엔 무리한 측면이 있고 미국도 그것을 모를 리 없다"며 "그렇다면 단순한 감축 시기 단축 노력보다 미국의 진의를 파악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말했다.

부형권기자 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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