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행정수도건설추진위원회가 국회와 대법원 등 헌법기관까지 포함된 85개 국가기관을 잠정 이전 대상으로 발표하자 한나라당이 9일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한나라당은 이날 상임운영위원회의에서 신행정수도 이전을 ‘정략적인 천도’라고 규정한 뒤 정부의 신중한 대응을 촉구했다.
김덕룡(金德龍) 원내대표는 “당초 정부 계획은 행정수도 이전이었는데 지금 보니까 사실상 수도를 옮기는 것으로 드러났다”며 “이럴 경우 국민적 합의가 필요한 만큼 당 정책위에서 심도 있게 따져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체 국가단위기관 269개 중 검토 대상 143개의 59.4%, 2만4000여명의 인원이 이전 대상이라는 게 천도의 근거로 제시됐다.
이강두(李康斗) 정책위의장은 “현 정부는 처음엔 ‘수도 기능의 극히 작은 부분을 이전한다’고 했다가, 다음엔 ‘새 세력이 국가를 지배하기 위한 터를 잡기 위해 천도가 필요하다’고 말한 뒤 다시 ‘천도는 아니다’라고 말을 뒤집는 등 국민을 우롱했다”고 비판했다.
천문학적인 비용 조달 문제도 비판의 대상이 됐다.
당 정책위는 정책 성명을 통해 “최근 정부는 △행정수도 이전 45조원 △신도시 건설 8조원 △농촌투융자계획 119조원 △장기임대주택건설사업 63조원 △자주국방증강사업 209조원 등 막대한 재정이 필요한 국책사업을 추진하고 있다”며 “이대로 갈 경우 국가재정이 파탄날 것이 뻔하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해 박근혜(朴槿惠) 대표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정부가 행정수도 이전에 어느 정도의 돈이 드는지 소상히 밝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나라당은 이날 공세가 행정수도 이전 반대로 비칠 것을 우려해 정부의 졸속 대응을 비판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충청 민심을 의식해서다.
당내에선 행정수도 이전 문제를 국민투표에 부쳐 정면 돌파하자는 강경론도 나오고 있으나 당분간 여론의 추이를 지켜보자는 게 중론이다.
민주노동당도 신행정수도 이전 논의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김성희 부대변인은 이날 “신행정수도 이전이 현재의 기형적 중앙집중구조의 해소라는 본래 목적에 부합하기보다는 서울과 수도권의 문제를 단순히 행정수도 이전지역으로 옮겨 놓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낳게 한다”며 “국가 균형발전, 지역 분권 및 활성화, 부동산 값 폭등 등으로 인한 민생 악화 방지책을 폭넓게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열린우리당은 한나라당의 공세에 대해 ‘야당의 발목잡기’로 일축했다.
김현미(金賢美) 대변인은 “지난해 말 이미 여야 표결로 국회에서 결정한 사안에 대해 국민투표를 거론하며 다시 정치 쟁점화하려는 것은 박근혜 대표가 말하는 상생의 정치와 맞지 않는다”며 “야당은 발목잡기를 중단하라”라고 주장했다.
당 신행정수도건설특별위원장인 박병석(朴炳錫) 의원도 “노 대통령의 대선 승리와 국회 표결로 이미 결정된 일인 데다 이미 신행정수도 건설이 추진되고 있는 상황에서 야당의 주장은 국론 분열만 부추길 뿐”이라고 비난했다.
정연욱기자 jyw11@donga.com
이승헌기자 dd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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