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노블리안스]이철용/건설 살리기의 딜레마

  • 입력 2004년 6월 13일 18시 22분


정부는 최근 건설경기를 지렛대로 경기 부양을 꾀하고 있습니다.

여기엔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건설업이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7.5%로 10% 미만인 선진국에 비해 훨씬 높습니다. 10억원 투자로 만들어 낼 수 있는 일자리도 20.8명분으로 제조업(14.4명분)보다 많습니다. 소비와 설비투자가 부진한 상황에서 그나마 기댈 언덕은 건설업인 셈입니다.

‘건설경기를 살리겠다’는 결단이 쉽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지난해 이후 부동산정책의 기조는 ‘투기 차단’이었기 때문입니다. 정부가 마련 중인 건설경기 살리기 대책의 이름이 ‘부양 방안’이 아니라 ‘연착륙 방안’이라는 데서도 정부의 고충이 짐작됩니다. ‘부동산정책의 근간은 변함없다. 다만 병마(투기)와 싸우는 과정에서 몸(건설경기)이 약해지고 집안(경제전체)이 쑥대밭으로 변한 만큼 지금은 일단 몸을 추스르고 집안을 살려야 할 때다’는 취지로 읽힙니다.

홍재형 열린우리당 정책위의장이 부총리 시절에 한 말이 있습니다. “개혁은 장기판의 졸(卒)처럼 하라!” ‘개혁에 후퇴란 있을 수 없다. 하지만 상황에 따라 잠시 옆으로 비켜서거나 에돌아갈 수는 있다’는 뜻입니다. 투기와의 싸움은 개혁 이상의 공을 들여야 합니다. ‘부양’ 대신 ‘연착륙’을 선택한 것이 이런 ‘개혁과정에서의 비켜서기’ 수순이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비켜서기도 만만치가 않습니다. 도로 항만 등을 건설하는 대규모 공공공사를 일으킬 여지가 과거보다 적어졌습니다. 건설경기 살리기의 특명을 민간 건설업체가 떠받들어야 하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건설회사 매출의 절반가량은 주택건설 사업에서 나옵니다.

자칫 손을 잘못 댔다가는 건설경기 살리기는 고사하고 간신히 뒷덜미를 잡은 집값을 풀어주고 상심한 투기꾼이 재기할 기회를 제공하기 십상입니다.

부동산정책 담당자들이 경제 전체의 소비 및 투자 심리를 촉발하면서도 부동산투기 심리를 자극하지 않는 묘안을 내놓기를 기대합니다.

이철용 경제부기자 lc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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