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마당]조동근/氣살리는 개혁이 필요하다

  • 입력 2004년 6월 17일 18시 49분


사람은 누구든 ‘오류’를 범할 수 있다. 하지만 오류 가능성을 인정할 때 오류는 다양한 논의를 통해 걸러지게 된다. 옳다고 굳게 믿을수록 역설적으로 오류는 남아 있기 쉽다. 더욱 위험한 것은 옳다는 믿음에 정의라는 ‘도덕적 잣대’를 대는 것이다.

우리는 김영삼 정부 이래 ‘개혁의 시대’를 살아왔지만 경쟁력 제고와 국민 통합의 측면에서 개혁은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다. 그래서 국민은 개혁 피로감에 젖게 됐고 개혁은 타성화됐다. 이는 개혁 독선이 빚은 역작용이다. 개혁 독선은 ‘나는 옳으니까 상대방만 변하면 모든 것이 풀린다’는 식의 정책 사고에서 비롯된다.

노무현 대통령은 얼마 전 “정치인, 기업인, 언론이 개혁을 저지하기 위해 위기를 부추겨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는 기득권층이 개혁을 저지하기 위해 연합전선을 펼 수도 있다는 ‘위기 조장론’이라고 할 수 있다. 연합전선은 공동의 이해관계가 있을 때 가능하다. 그러나 정치인, 기업인, 언론 3자간에 어떤 공동이해가 존재하는지 쉽게 가늠되지 않는다. 위기 조장론을 기업에 국한시켜, 기업이 위기를 증폭시킬 만한 힘을 가진 강자이고 또 그렇게 했다고 가정해 보자. 하지만 이는 ‘승자의 저주’에 지나지 않는다. 위기 증폭의 가장 큰 피해자는 기업일 것이기 때문이다. 위기 조장론은 ‘그들과 우리’를 나누는 독선적 사고가 빚은 예단일 뿐이다.

지금 경제상황이 위기인지 아닌지 굳이 논쟁을 하지 않더라도 위기의 ‘징후’가 뚜렷이 감지되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가장 중요한 것은 투자 부진과 기업가 정신의 쇠퇴다. 투자는 미래를 위한 의사 결정이며 기업가 정신은 이용되지 않은 시장 기회를 선점하려는, 깨어 있는 기민성이다. 그만큼 우리는 미래의 성장동력을 확충하지 못하고 있다. 소모적인 ‘규제의 게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기업 정책의 기저에는 대기업 집단을 도덕적 잣대로 재단해 부정적으로 보는 인식이 짙게 깔려 있다. 정부가 금과옥조로 여기는 시장개혁도 기업집단 일가(一家)의 무분별한 지배력 확장을 차단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팽창 욕구를 제어하지 못하고 ‘무분별한’ 지배력 확장을 꾀하는 기업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외환위기의 구조조정 과정을 겪으면서 효율적이지 못한 대마(大馬)는 필사(必死)한다는 것을 체득했기 때문이다. 기업은 여건 변화에 자기 합리적으로 반응하는 생물이기에 이렇게 진화한다. 시장규율만큼 기업의 자율적 변신을 압박하는 장치도 없다.

개혁에 성공한 선진국 사례는 ‘시장 중심의 친시장적 개혁’이란 특성을 갖는다. ‘정부의 시장 개입 최소화, 시장경제 원칙 준수, 노동시장 등 요소시장의 유연성 제고, 경쟁 촉진과 회계 투명성’ 등이다. 여기에는 설계주의나 이상주의, 도덕적 잣대가 없다. 가치 중립적이다.

규제 중심의 개혁은 지양돼야 한다. 민간 영역을 존중하고 활력을 북돋우는 개혁, 민간 부문의 혁신을 촉진하는 개혁이 돼야 한다. 개혁의 독선에서 벗어나려면 설계주의의 정교함으로 경제의 진로를 교정할 수 있다는 과신을 버려야 한다.

조동근 명지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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