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퉁불퉁한 느낌을 주면서도 거침이 없고 시원시원하다.
‘MBtious’. 지난달 초 문을 연 이 시장의 개인홈페이지 주소다. 이 시장의 이름 영문 이니셜(MB)과 ‘대망을 품은’이라는 뜻의 ‘ambitious’를 합성한 것. 그의 지향점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그러나 그는 첫 질문으로 ‘대권’이란 말을 꺼내자마자 “과거의 권위주의 정치시절 발상 같다”며 “불필요한 오해를 피하기 위해 요즘 여의도에 한 번도 안 갔고 중앙당사에도 안 가고 있다”고 일단 비켜갔다.
곧바로 “당내 기반이 너무 약한 것 아니냐”고 찌르자 “기성 정치인 스타일로 해서 표를 얻겠다는 생각은 없다. 내가 추진하는 방식으로 해서 안 되면 할 수 없다. 그 점은 확고하다”고 잘라 말했다. 평생 ‘마이웨이’ 행보로 일관해 온 그의 체취가 그대로 감지된다.
실제 이 시장에게 개발독재시대의 이미지가 강하게 느껴지는 것은 다소 무모하다는 느낌마저 주는 추진력 강한 일처리 방식 때문이다.
정치 역정만 해도 그렇다. 1995년 민자당 서울시장 후보 경선 당시 청와대가 ‘경선불가’의 메시지를 보냈지만 그는 정원식(鄭元植) 전 총리와의 경선에 나서 단단히 ‘미운털’이 박히기도 했다.
이 시장은 99년 7월에는 96년 15대 총선 당시 법정선거비용을 초과 지출한 혐의로 벌금 400만원을 최종 선고받았다. 이에 앞서 그는 2심 판결 직후 이미 의원직을 사퇴했다. 정치적으로도 간단치 않은 풍상을 겪은 셈이다.
7월 5일 첫 전파를 탈 한 방송사의 기업드라마 ‘영웅시대’가 화제에 올랐다. 고 정주영(鄭周永)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일대기에 이 시장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는 “나의 배역을 맡은 탤런트가 유동근씨인데 1990년대 나를 소재로 한 TV드라마 ‘야망의 세월’에서 나의 아내 역이 전인화씨였다”며 “결국 (유동근 전인화씨) 부부가 모두 나와 인연이 있게 됐다”라고 웃었다.
당시 ‘야망의 세월’에서 이 시장 역을 맡았던 탤런트 유인촌(柳仁村)씨는 그 인연으로 이 시장에 의해 올 3월 서울문화재단 대표이사에 임명됐다. 당시 ‘행정 경험이 없는 사람을 문화예술 단체장에 임명했다’는 이유로 논란을 빚기도 했다.
이어 이 시장(포항 동지상고)이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처럼 상고 출신이라는 얘기가 화제에 올랐다. 그러나 그는 즉각 “사람에겐 인격 형성이 중요하다”며 “나는 기독교적 분위기에서 자랐다. 그렇지 않았으면 아마 사회주의를 주장했을 것이다. 결국 온건한 학생운동을 했다”며 노 대통령과의 차별성을 강조했다.
고려대 경영대학 학생회장으로 6·3시위를 주도해 6개월 복역한 뒤 그는 기업으로 발길을 돌렸다. 당시 운동권 출신이 기업 현장에 몸을 던진 것은 아주 드문 일이었다.
그는 12년 만에 현대건설 사장에 올랐던 최고경영자(CEO)로서의 경험을 근거로 자신의 리더십을 ‘현실적 실용주의적 입장’이라고 규정했다. 그러면서 ‘성장’ 없는 ‘분배’의 허구성을 지적했다.
“이 지구상에서 우리나라만 진보와 보수를 따진다. 문제는 경제성장 과정에서 격차가 너무 벌어졌다는 것이다. 이 간격을 해소할 수 있는 정책을 가진 사람이 정치인이 돼야 한다. 그 격차를 줄이는 것이 진보와 보수를 없애는 길이다.”
한국 내 남남(南南) 갈등과 한미 갈등을 바라보는 그의 시각에도 실용적 입장이 바탕에 깔려 있다.
“우리나라는 이제 세계 11대 통상국가다. 미국엔 5대 통상국가로 성장했다. 이젠 서로 생각을 바꿔야 한다. 국익이 기준이 돼야 한다. 미국의 국익과 우리의 국익이 일치하는 쪽으로 가야 한다. 일본 국민의 70%는 반미(反美)인데도 정부 정책을 따라간다. 국익 때문이다. 감정적으로 하면 대화가 되겠느냐. 드러내 놓고 미국과 중국 중 중국이 더 좋다고 말하는 바보가 세상에 어디 있느냐.”
이어 그는 변화와 통찰력이 지도자의 덕목임을 강조했다.
“빠르게 변하는 속도에 편승하기만 하면 되는 게 아니다. 지도자는 한 걸음 더 앞서가야 한다. 서울시장으로 들어와 보니 모두가 과거의 개념으로 나를 보려고 하더라. 내가 끊임없이 변하는지를 모르는 것 같았다.”
그는 서울시장이 된 후 내부적 의사소통을 통해 사업 추진의 공감대를 넓히는 수평적 리더십을 추구했다고 말했다. 실제 청계천 복원사업을 시장선거 공약으로 내세울 때도 선거캠프 내부에서 의견을 조율하는 데만 6개월 정도 걸렸다고 한다.
이 시장은 수도 이전 문제로 촉발된 ‘분권과 집중간의 갈등’이 시대착오적이라는 이유를 들어 현 정부가 추진하는 수도 이전에 반대 입장을 거듭 밝혔다.
“세계무역기구(WTO) 체제 이전에는 국경이 있었기 때문에 인위적 분권이 가능했다. 하지만 지금은 차별화된 발전을 시켜야 한다. 예를 들어 광주가 교육의 중심지라면 집중 투자해 해외 유학보다는 광주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하면 된다. 이것이 모여 국가 전체의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다.”
경제위기 타개책을 묻자 국가가 장기적인 경제 회생 비전을 내놓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기업들에 사람을 30% 더 뽑으라고 해도 나중에 구조조정을 해서 그만큼 자른다. 장기적인 경제 비전이 없으면 이처럼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꼴이 된다. 기업들이 일을 잘 할 수 있고 일자리를 늘릴 수 있는 치밀한 계획을 세워야 한다.” 끝으로 골프가 화제에 올랐다. “큰 꿈을 가진 사람은 골프를 그만 두더라”고 농담을 던지자 그는 “요즘은 바빠서 골프를 못 한다”고 말했다. 이 시장의 골프 실력은 80타대 중반 정도다.
아무튼 개발독재시대의 ‘이명박 신화’가 21세기에도 과연 통할 수 있을까. 이 시장의 CEO형 실용주의 리더십과 풍운아적 요소가 어떻게 시대적 요구와 접점을 찾아갈지가 주목되는 포인트다.
정연욱기자 jyw11@donga.com
박민혁기자 mhpark@donga.com
▼“당장 불편하더라도 장차 이득되면 한다”▼
“지도자는 인기가 없더라도 국익을 보고 가야 한다.”
이명박 서울시장은 ‘목표 달성을 위한 불편 감내’라는 원칙을 강조했다. 서울시 교통체계 정비와 서울시청 앞 광장 건설에 대해 불만여론이 적지 않다는 지적에 대한 답변이었다.
최근 서울 삼일로와 청계천 복원공사 구간에선 그가 도입한 중앙버스전용차로제 도입에 따른 교통 혼잡이 극심하다.
또 내년부터 혼잡지역이나 시설에 대해 교통량을 강제로 제한하기로 한 ‘혼잡특별관리구역제도’의 부작용을 우려하는 교통 전문가들도 많다.
“택시운전사들이 서울광장 때문에 길이 막힌다고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다”고 질문을 던졌다.
그는 주저 없이 “곧 정상화된다. 지금은 불편한 것 같아도 미래에 좋은 것은 해야 한다”고 답했다. 마치 ‘성장신화’에 대한 믿음처럼 “잘될 것”이란 낙관론으로 들린다. 그는 자신이 이룩한 교통체계 정비 성과에 대한 자랑도 잊지 않았다.
“시장 취임 후 교통업무 관련 공무원 250명 전원을 교통업무와 무관한 공무원들로 교체했다. 버스 노선 조정권을 버스회사에서 시로 가져오려면 공무원들이 버스회사와 연관이 없어야 했다. 결국 버스회사들이 시의 버스노선 조정 입찰에 모두 참여했다.”
이 시장은 또 성수동과 뚝섬 일대를 상권으로 개발하려던 고건(高建) 전 서울시장의 계획을 뒤엎고 녹지공간으로 만들기로 했다. 일관성보다는 서울을 환경친화적으로 바꾸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자신의 소신 때문이다.
한 서울시 고위 공무원은 “이 시장은 ‘불도저’가 맞다. 그러나 무작정 밀어붙이기보다 근거를 갖고 상대편을 설득하다가 ‘다 됐다’ 싶을 때 확 낚아챈다”고 말했다.
그러나 다른 공무원은 “자신이 한번 옳다고 생각하면 아무리 반대가 많아도 결국 끝까지 밀어붙이는 성격”이라고 우회적으로 그의 문제를 지적하기도 했다.
이명건기자 gun4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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