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주부인 이동희씨(44·사진)와 원생인 ‘아들’ 10여명이 ‘안내견 베르나’라는 책을 펴놓고 둘러앉았다.
“27세에 백내장으로 실명한 일본인 군지 나나에라는 사람이 쓴 책이란다. 13년 동안 자신의 눈이 돼 줬던 안내견 베르나와의 추억이 담겨 있어.”
원생들이 여기저기서 질문을 던졌다.
“실제로 있었던 일이에요?”
“안내견을 보고 싶어요.”
이씨가 원생들에게 독서의 기쁨을 나눠주겠다고 나선 것은 8년 전.
이씨는 원래 아이들을 무척 좋아했다. 대학 시절에는 보육원 봉사활동을 했고, 졸업 후에는 전공(역사교육학)을 살려 5년여간 부산의 한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1988년 결혼과 더불어 서울생활을 시작한 뒤로는 전업주부로 회사원인 남편을 뒷바라지하고 두 아들(중3, 중2)을 키우며 살았다.
평범하게 지내던 이씨는 1994년 당시 초등학생인 아들에게 ‘올바른 책읽기’를 가르쳐 주기 위해 사설강좌를 수강하게 되면서 ‘다른 삶’을 살게 됐다.
“독서는 ‘보물단지’를 여는 일이죠. 아들들에게 책읽기를 가르치면서 소외받는 아이들에게도 도움을 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결심이 선 이씨는 뜻이 맞는 주변의 몇몇 주부와 함께 무턱대고 서울소년원을 찾아갔다. 하지만 처음엔 어느 누구도 반겨주지 않았다. 어렵사리 만난 원생들도 ‘마음의 문’을 열지 않았다.
“함께 책을 읽고 같이 이야기하고 싶다고 설득했어요. 어린 나이에 상처입고 지친 아이들에게 책이 좋은 약과 포근한 엄마가 될 테니까요.”
아이들이 마치 귀를 막고 있는 것 같아도 이씨는 포기하지 않고 매주 금요일 이곳을 찾았다. 집인 서울 도봉구 쌍문동에서 지하철과 마을버스를 타고 2시간이나 걸리는 거리다.
시간이 지나면서 원생들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퉁명스럽고 거칠기만 하던 아이들이 독서모임을 위해 책을 읽게 됐고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마음도 열었다.
“언젠가 한 중학생 원생에게 책을 선물했더니 몇 번씩이나 ‘이 책에 제 이름 써도 돼요?’라고 묻는 거예요. 왜 그러나 했더니 ‘생전 처음 내 책을 가져 본다’며 너무 좋아하더라고요.”
이씨를 비롯한 소년원 독서지도봉사자 10여명은 한 해 동안 원생들이 책을 읽고 쓴 글을 모아 매년 ‘들꽃사랑 이야기’라는 문집도 펴내고 있다. 원생들의 희망이 담긴 소중한 기록이다.
‘난 내 자신에게 너무나도 소홀하게 대해 왔던 것 같다. 이제부터라도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 시작해 보자. 밑바닥부터 다시 시작하는 거야.’(한 원생이 쓴 ‘내 자신에게 보내는 편지’ 중)
조이영기자 ly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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