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래도 이대로는 아니 되겠다. 지금이라도 항우와 싸워 결판을 내자!”
그러면서 장수들을 자신의 군막으로 불러 모으게 했다. 장수 중에서도 침착한 편인 주발과 관영이 그런 한왕 유방을 말리고, 뱃심 좋은 번쾌까지도 주발과 관영을 편들었다. 그래도 한왕은 분노를 삭이지 못했다. 여전히 싸우자고 고집하고 있는데 소하가 나섰다.
“대왕께서는 진정하십시오. 한중에서 왕 노릇 하기가 아무리 나쁘기로서니 죽는 것보다 낫기야 하겠습니까?”
바깥 싸움터에서는 빛이 나지 않았지만 안에서 살림을 살고 문서를 꾸미는 도필리(刀筆吏)로서는 누구보다 유능한 소하였다. 소하는 한왕이 자영의 항복을 받고 처음 함양에 들어갔을 때도 홀로 진나라의 승상부와 어사부의 도적(圖籍)과 문서들을 거두어 뒷날 한왕이 천하를 얻는 데 요긴하게 쓸 수 있도록 해주었다. 한왕이 패공으로 있을 때는 승(丞)으로 썼으나 왕이 되면서 승상(丞相)으로 삼았는데, 평소 별로 말수가 없어도 한번 입을 열면 반드시 옳고 요긴한 말만 골라 하는 그라 한왕도 그의 말은 언제나 귀담아 들었다.
“죽다니? 어째서 죽는단 말이오?”
한왕이 치미는 속을 억누르며 물었다. 소하가 차분하게 대꾸했다.
“지금 대왕이 거느린 장졸은 패왕에 비해 보잘것없으니 백 번 싸워봐야 백번 질 것입니다. 그리고 싸움에 지면 죽음이 있을 뿐이니, 대왕께서 죽지 않고 어찌하겠습니까? 무릇 한사람에게 몸을 굽혀 만백성 위에 우뚝 설수 있었던 사람으로는 탕왕과 무왕이 있었습니다. 탕왕과 무왕은 걸주(桀紂) 같은 폭군에게 몸을 굽힐 수 있었기 때문에 천하를 얻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바라건대 대왕께서는 이대로 한중(漢中)의 왕이 되시어 백성을 잘 보살피고 어진 이들을 불러들이시며, 파촉 땅의 사람과 물자를 거두어 써서 힘을 기르도록 하십시오. 그런 다음 돌아와 삼진(三秦·셋으로 나뉜 진나라 땅)을 평정하신다면 천하를 도모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 말을 듣자 한왕도 퍼뜩 정신이 들었다. 성난 표정을 풀고 여럿을 돌아보며 말했다.
“승상의 말이 옳소. 좋소이다. 모두 돌아가 군사들에게 한중으로 떠날 채비를 하게 하시오.”
그때 한왕 유방의 군사는 10만이 넘었다. 그러나 패왕 항우는 유방이 큰 세력을 거느리고 가는 게 못 미더워 그중에서 3만만 데리고 갈 수 있게 하였다. 한왕이 그들 3만을 이끌고 한중으로 떠나자, 제후국의 군사들 중에서 한왕을 사모하는 자들이 몰래 도망쳐 나와 한군(漢軍)이 되어 따라갔는데 그 수가 오히려 3만을 넘었다.
한왕은 두현(杜縣) 남쪽으로 해서 식(蝕)으로 접어들었다. 식은 한중으로 들어가는 골짜기 길(谷道)의 이름으로 어떤 이는 뒷날의 자오곡(子午谷)을 이른다 하고, 또 어떤 이는 낙곡(駱谷)을 이른다고도 한다. 워낙 지세가 험해 바위벽을 뚫고 통나무를 박아 넣거나 벼랑에 나무다리를 매달아 만든 잔도(棧道)와 각도(閣道)가 유일한 길이었다.
그때 장량은 패왕을 따라온 한왕(韓王) 성(成)을 다시 만나게 되어 한나라의 사도(司徒)로 돌아가 있었다. 그러나 한왕 유방의 정에 이끌려 배웅을 핑계로 포중(褒中)까지 따라갔다. 유방이 돌아가려는 장량을 잡고 말했다.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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