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진의 영화파일]‘무간도 3’의 량차오웨이

  • 입력 2004년 7월 1일 17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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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사람과 영화
사진제공 사람과 영화

눈이 점점 멀어가는 무사는 자신에게 죽음이 가까이 오고 있음을 감지한다. 그의 얼굴에 쓸쓸한 표정이 스친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 다시 무표정한 얼굴로 돌아간 그는 칼을 빼들고 다가오는 자객들을 맞는다. 그리고 죽음 앞으로 한발 더 다가선다.

왕자웨이(王家衛) 감독의 영화 ‘동사서독’(1994년)은 량차오웨이(梁朝偉)가 주인공은 아니지만 그 때문에 기억이 나는 영화다.

어디 ‘동사서독’뿐이겠는가. 무려 30여 편에 이르는 그의 출연작 가운데는 거론하지 않을 수 없는 작품들이 부지기수다. 그가 벙어리 사진사로 등장하는 허우샤오셴(侯孝賢) 감독의 걸작 ‘비정성시’(1989년)도 빼놓을 수 없다. 영화에서 그는 정말 눈으로만 연기를 한다. 그 나약하고 처연한 눈빛.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역사의 격랑 속에서 끝내 살아남는 끈질긴 민초의 심성을 대변해 낸다.

량차오웨이라면 여성 관객들은 소리부터 질러댄다. 좀 지나치다 싶지만 이해가 된다. 나 같은 남성조차 속으로는 같은 마음이기 때문이다. 그를 좋아하는 이유에 대해 사람들은 비슷한 얘기를 한다. 비극에 어울리는 남자다, 모든 걸 받아주는 남자다, 복수보다는 용서를 할 것 같은 남자다, 가련하기 짝이 없는 인생을 살아갈 것 같은데 오히려 그래서 끝없이 모성애를 자극하는 남자다 등등.

실제로 영화 속의 그는 복수를 모른다. 최근작인 장이머우(張藝謀) 감독의 ‘영웅’에서도 그랬다. 그가 연기한 극중 인물 파검은 진시황을 죽일 수 있는 마지막 일합(一合)의 순간에도 칼을 거두어들인다. 반면에 한 순간의 분노로 자신의 가슴으로 파고드는 연인 비설의 칼날을 피하지 않고 받아들인다. 영화 속에서 그는 늘 죽이기보다는 죽는 쪽을 택하는데 그래서 그는 늘 죽음과 가까이 있는 캐릭터를 맡는다.

관객들은 그가 영화 속에서 또다시 죽을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의식 속에서 벌어지는 그와의 ‘동반자살’, 그 염세적 매력의 유혹을 떨쳐버리지 못한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그의 작품은 베트남 출신의 프랑스 감독 트란 안홍의 ‘시클로’다. 이 영화에서 그는 무자비한 조폭 두목 역을 맡았지만 그는 그일뿐, 어디로 가지 않는다. ‘시클로’의 그만큼 비극적 분위기의 조폭 두목 이미지를 그려낼 수 있는 배우는 동서양을 통틀어 그리 많지 않다. 그는 영화에서 폭력을 쓸 때마다 코피를 툭 흘린다. 흐르는 코피를 쓱쓱 닦아내는 그에게서는 선이든 악이든 그 어느 편에 서있든 삶의 의미는 매한가지일 뿐이라는, 허무한 반(反)영웅의 이미지가 배어 나온다.

그래서일까. 영화 속에서 그가 행하는 잔혹한 폭력은 조금 다른 차원의 의미로 받아 들여 진다.

이번 영화 ‘무간도3 종극무간’은 그의 팬들로서는 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이미 그는 1편에서 비참하게 죽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걱정은 할 필요가 없다. 이 영화를 만든 감독이 바보이겠는가. 3편은 그가 죽은 직후의 시점에서 끊임없이 과거로, 플래시백을 한다. 그가 도저히 나오지 않을 수가 없다. 이렇게 얘기하면 마치 1편과 2편을 재탕, 삼탕하는 것처럼 들리지만 장담컨대 작품의 완성도면에서는 3편이 가장 우수하다.

참고로 그는 기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배우이긴 해도 인터뷰하기는 가장 어려운 배우에 속한다. 영화 속 이미지와 평소 이미지가 완전히 같기는 쉽지 않은 법인데 그는 ‘거의 100%’ 영화 속 모습과 비슷하다. 매우 신사적인 것은 더할 나위 없이 좋지만 그는 거의 말이 없는 사람이다.

혼자가 아니라 류더화(劉德華)나 리밍(黎明)과 함께 인터뷰할 때는 사람들에게 묻혀 잘 보이지 않는다. 실제로 그는 잘 보이지 않는 사람인 것이다. 인터뷰를 영화에서처럼 그 눈빛으로 한다고 생각해 보라. 2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영화평론가 ohsjin@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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