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땅우리魂 영토분쟁 현장을 가다]<13>中의‘신도 圖上침략’

  • 입력 2004년 7월 1일 18시 52분


압록강을 빠져나와 섬의 동쪽을 바라보며 달리다 보면 ‘비단섬’이라고 큼지막하게 적힌 간판을 발견할 수 있다. 이 섬에는 이름 그대로 비단의 원료인 질 좋은 갈대가 풍족하다. 북한은 2002년 9월 신의주를 경제특구로 지정하면서 내륙의 용암포와 함께 비단섬에 중공업 단지를 조성할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둥강=특별취재팀
압록강을 빠져나와 섬의 동쪽을 바라보며 달리다 보면 ‘비단섬’이라고 큼지막하게 적힌 간판을 발견할 수 있다. 이 섬에는 이름 그대로 비단의 원료인 질 좋은 갈대가 풍족하다. 북한은 2002년 9월 신의주를 경제특구로 지정하면서 내륙의 용암포와 함께 비단섬에 중공업 단지를 조성할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둥강=특별취재팀
《“조선(북한) 배를 만나면 한국말은 절대 하지 말고 중국 군인인 척 하라.” 해상 치안을 담당하는 중국 관리가 취재팀에게 거듭 당부하면서 중국 군복을 건넸다. 모터보트로 압록강 어귀의 하이룽(海戎)이라는 마을을 출발한지 10여분 지나자 갈대가 무성한 비단섬이 모습을 드러냈다. 카메라 셔터를 누르려 하자 동승한 중국 관리가 황급히 제지했다. 북한 경비대도 보이지 않는 드넓은 바다에서 그가 왜 그렇게 긴장할까. 이유는 간단했다. “이 섬은 중국 땅이 아니라 조선 땅이니까.”》

●한반도의 서쪽 끝 ‘신도군 마안도’

한국 교과서 지리부도에 한반도의 서쪽 끝은 ‘평안북도 용천군 마안도 서단’으로 나와 있다. 그러나 북한의 행정구역에 따르면 마안도(馬鞍島)는 용천군이 아니라 신도군에 속해 있다. 압록강 어귀의 여러 섬으로 이뤄진 신도군 내에서 비단섬이 가장 크다. 마안도는 비단섬 노동자구의 한 섬.

신도(薪島)군의 섬들은 대부분 한반도보다 중국대륙 쪽에 더 가깝다. 마안도는 중국 둥강(東港)시에서 망원렌즈를 이용해 사진촬영이 가능할 정도. 하지만 신도는 역사적으로 줄곧 우리 땅이었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세종시대 이후 이곳에 관리가 상주했다. 실록엔 장자도(獐子島) 혹은 장도(獐島)로 나와 있다.

●슬그머니 도상침략을 시도한 중국

순조실록에는 1803년 청(淸)나라 군사 300여명이 신도에 무단상륙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후 청의 황제는 조선 의주부윤에게 ‘(청의) 죄인 6명이 장자도에 숨어들어가 살고 있으나 조선 군사들이 체포하지 않아 (청의) 군사를 동원했다’는 해명 공문을 보냈다. 이는 당시 청나라도 신도를 분명히 조선 땅으로 인식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실록에는 그밖에도 청나라 사람들이 무리를 지어 신도에 들어와 물건을 훔치거나 몰래 땅을 일구다 조선 군사들에게 쫓겨났다는 기록이 곳곳에 남아있다. 그런데도 1960년대 들어 중국은 신도에 대한 욕심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중국이 발간하는 지도 대부분에 신도를 슬그머니 중국 땅으로 표시해 놓은 것. 이른바 ‘도상침략(圖上侵略)’을 시도한 것이다.

●북한 지리천연기념물 ‘코끼리바위’

말안장처럼 길쭉하게 생긴 마안도는 둥강시에서 모터보트를 이용해 접근을 시도했다. 해안선 길이가 2km 조금 넘는 작은 섬인 이 섬의 오른쪽에는 북한 정부가 지리천연기념물 63호로 지정한 코끼리바위가 있다. 그 모양이 영락없이 코를 물에 늘어뜨린 채 걸어가는 코끼리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보트를 몰던 중국인은 코끼리바위가 멀찍이 보이는 바다 위에서 갑자기 보트를 멈췄다. 비단섬 가까이 가 줄 것을 부탁했으나 거절했다. 그물을 쳐놓은 어선이 워낙 많아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는 “압록강 쪽에서 바다로 나오면 그물이 없어 비단섬 접근이 가능하다”며 “중국 관리의 도움을 받는 게 좋다”고 귀띔했다.

●북한 섬에 불법으로 상륙한 취재팀


중국 둥강에서 모터보트로 20분 남짓 달리면 마안도가 모습을 드러낸다. 인천에서 배를 타고 둥강을 드나드는 한국인들이 먼발치로 이 섬을 지나치지만 마안도가 한반도의 극서점이라는 사실을 아는 이들은 많지 않다. 마안도 주위에서는 그물을 쳐 놓고 고기를 잡는 작은 중국 어선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이름 그대로 말의 안장을 닮은 형상의 마안도(왼쪽)와 그 옆의 ‘작은 마안도’(가운데), 그리고 북한이 지리천연기념물로 지정한 코끼리바위(오른쪽).-둥강=특별취재팀

며칠 뒤 압록강 어귀에서 다시 보트를 빌려 중국 공무원과 함께 비단섬으로 향했다. 비단의 원료가 되는 질 좋은 갈대가 무성하다고 해서 비단섬으로 불리는 이 섬의 해안가엔 알려진 그대로 온통 갈대가 출렁였다. 섬 가까이 다가가자 정박해 있는 북한 어선들이 보였다. ‘비단섬’이라고 적힌 큼지막한 안내판도 서 있었다.

비단섬 일대는 민물과 바닷물이 섞여있는 천혜의 어장으로 뱅어가 많이 잡힌다. 인근의 무인도에 보트를 대게 하자 중국 공무원은 “기념사진만 찍고 빨리 나오라”고 성화를 부렸다. 취재팀이 “무인도인데 뭐 어떠냐”며 늑장을 부리자 그는 “조선 땅에 불법 상륙한 것이어서 충돌이 생길 수 있다”며 재촉했다.

●“조선 땅인데 중국인들이 어케 오나”

보트는 다시 압록강을 향했다. 도중에 북한 배와 마주쳤을 때 취재팀이 중국 공무원의 주의를 어기고 북한 어민에게 말을 붙였다. “비단섬에 사세요?” 뜻밖의 한국말에 잠깐 놀란 기색을 보이던 북한 어민 한 명이 밥을 먹다 말고 대화에 응했다. “비단섬 아니고 룡암포.” 다시 물었다. “비단섬에 중국 사람들이 가끔 올라오나요?” 북한 어민의 대답이 시원스러웠다. “거긴 조선 땅인데 그 사람들이 어케 오나.”

중국이 1960년대 들어 지도에 왜 신도를 그들의 땅으로 표시했는지 이유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 중국이 신도와 관련해 어떤 발표를 한 적도 없다. 교통의 요지이기 때문에 혹은 경제적 가치가 크기 때문에 중국이 탐을 냈을 수 있다. 또 서해 바다에 묻혀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석유를 의식한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중국인들도 신도는 조선 땅으로 알아

독도가 자기 땅이라며 상륙까지 시도한 일본인들과는 달리 신도를 중국 땅이라고 생각하는 중국인들은 만나기 어려웠다. 둥강에서 만난 50대의 중국 어민은 “어렸을 때부터 신도는 조선 땅으로 알았다. 조선 사람들은 신도 가까이에서 고기를 잡지만 우리는 섬에서 떨어져서 고기를 잡는다”고 했다.

중국 어선의 안전을 관리하는 공무원도 “신도가 중국 땅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 있느냐”는 물음에 “없다”며 고개를 저었다. 최근 중국 단둥시가 발간한 압록강 일대 관광지도에는 ‘薪島’라는 표기 아래 ‘朝’자를 적어놓아 이곳이 북한 소유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지도에 나와 있는 국경선으로 구분해도 신도는 북한 땅에 속한다.

●결국 실패로 끝난 중국의 도상침략

올해 1월 중국 지도출판사가 발간한 중국 전국지도에도 신도는 북한 땅으로 분류돼 있다. 의아한 것은 취재팀이 신도 일대를 돌아볼 때 북한 경비선을 발견할 수 없었다는 점. 비단섬 해안에서 경비를 서는 북한 군인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인들은 신도 접근을 꺼렸다. 그들의 설명은 한결같았다. “그곳은 조선 땅이니까.” 중국의 도상침략에 북한이 어떻게 대응했는지는 알려진 것이 없지만 중국의 시도는 별 성과를 거두지 못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단둥·둥강=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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