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중 대표적인 것이 ‘저희나라’라는 말이다. 방송 경력이 오래 몸에 밴 사람은 이런 말을 쓰지 않지만 일부 연예인이나 취재원의 입에서 불쑥불쑥 이 말이 나오면 필자는 식은땀이 난다. 아이들이 들으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저희나라’는 외국인에게 우리나라를 낮춰서 말할 때에만 쓰일 수 있는 말이다. 쉽게 말해 병자호란 때 인조가 삼전도(지금의 서울 송파구 삼전동)에서 머리를 조아리는 치욕을 당할 때처럼 항복한 군주가 승리한 군주에게 쓰는 말이 ‘저희나라’다.
지금 우리나라 국민은 이 말을 쓸 이유가 없다. 이것은 과공비례(過恭非禮·지나친 예의는 오히려 무례한 행위)의 차원을 넘어서는 것이다.
‘저희’는 ‘우리’의 낮춤말이다. 따라서 우리끼리는 써서는 안 될 말이다. 대학생들이 교수나 총장에게 ‘저희 학교’라 해서도 안 되고, 사장이 회장에게 ‘저희 회사’라 해서도 안 된다.
다만 나라와는 달리, 회사나 조직의 경우 다른 회사나 조직의 사람에게는 ‘저희 회사’라고 할 수 있다.
나이가 많고 직위가 높은 사람이 한참 아랫사람에게 ‘저’라고 낮추는 것도 사실은 예의에 어긋난다. 학교 수업 때 교사가 제자들에게 ‘저’라고 말하는 것도 부자연스럽다.
그러나 다중, 대중을 상대로 할 때는 다르다.
자신이 학식이 많다고 TV 강연 때 청중 앞에서 반말을 하거나, 인터뷰하는 방송 기자에게 나이가 어리다고 반말을 하면 곤란하다. 이때에는 익명의 여러 사람이 자신의 말을 듣고 있다는 가정 아래 ‘저’라고 말하고 경어를 쓰는 것이 좋다.
문제는 낯선 아래 항렬의 먼 친척, 학교 후배, 회사 부하 직원 등에게 자신을 어떻게 부르느냐는 것. ‘나’라고 부르는 것이 맞겠지만 처음부터 반말을 하기에는 곤란한 게 현실이다. 이때에는 ‘저’, ‘제가’ 등으로 자신을 지칭하다가 상대방이 “듣기 민망하니 말씀을 낮추시죠”라고 하면 말을 낮추는 것이 자연스럽다.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법. 상대방이 멀뚱멀뚱 있다면 그때부터는 ‘내가’ ‘나는’ 등으로 자신을 부르고 ‘∼하네’ ‘∼하게’ 등 상대방에 따라 말을 낮출 수밖에 없다.(도움말=국립국어연구원 어문실태연구부 전수태 학예연구관)
이성주기자 stein3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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