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한국판 그린스펀’을 기다리며…

  • 입력 2004년 7월 6일 17시 41분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4년 만에 연방기금 금리를 0.25%포인트 올렸다. ‘초저금리 시대’가 막을 내린 것이다. 주식시장으로 돈이 몰리던 ‘유동성 장세’도 사실상 종지부를 찍었다.

하지만 미국 증시의 반응은 담담했다. 오히려 상승세로 장을 마쳤다. ‘금리 인상=증시 악재’라는 등식이 무너진 셈이다. 한국을 포함한 해외 증시도 예외는 아니었다. 금리 인상보다 기업 실적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분위기다.

증시 전문가들은 이 같은 반응을 ‘백신 효과’로 풀이하고 있다. 미 금융당국이 인플레이션 압력에 쫓겨 금리 인상을 서둘러 단행한 게 아니라 시장의 흐름을 미리 읽고 ‘예방 접종’을 충분히 한 결과라는 것이다.

시장에 주사를 놓은 것은 ‘경제 대통령’으로 불리는 앨런 그린스펀 FRB 의장의 ‘입’이었다. 그는 4월 미 상원 은행위원회에서 “디플레이션 위협이 더 이상 문제가 아니다. 경제가 분명한 탄력을 받고 있다”고 발언했다. 시장은 금리 인상 가능성으로 받아들였다.

다음날 그는 “광범위한 인플레이션 압력은 아직 형성되지 않았다”며 금리 인상의 폭이 크지 않을 것임을 시사했다.

뒤이어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가 열릴 때마다 ‘인내심(Patience)’, ‘신중한 속도(measured pace)’ 등 금리 인상 폭을 가늠할 수 있는 실마리가 던져졌다. 무겁고 신중한 ‘그린스펀의 입’이 조금씩 열릴 때마다 시장은 조금씩 내성을 키웠다.

한국 경제 관료는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조차 짧은 기간에 수시로 바꿨다. 시장에서 흘러나오는 경제 위기론도 크게 무게를 두지 않는 눈치다. 더불어 시장의 불신도 여전하다.

최근 만난 한 외국계 증권사 임원은 “한국 경제부처 고위 인사의 얘기를 자주 보도하지 말아 달라”는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가벼운 ‘입’이 외국인 투자자의 불신을 부채질한다는 것이다. 시장은 이제 한국판 ‘그린스펀’을 기다리고 있다.

박 용기자 par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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