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땅 우리魂 영토분쟁 현장을 가다]<14>압록강섬들을 찾아

  • 입력 2004년 7월 8일 18시 50분


《강이라고 부르기 민망할 정도로 좁은 개울 건너편에 널찍한 논과 수십 채의 초가집이 있다. 논일을 하면서 이마의 땀을 닦는 농부들과 개울가에서 뛰노는 아이들의 모습이 평화롭다. 일제강점기 때만 해도 누런 잡초만 무성해 쓸모없는 땅이라는 뜻의 황초평(黃草坪)으로 불린 섬이 언제부터인가 황금평(黃金坪)이라는 새 이름을 얻었다. 대규모 관개공사와 간척사업으로 북한에서 단위경지당 쌀 생산량이 가장 많은 기름진 땅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조선과 청(淸)이 영유권을 다퉜던 황금평은 압록강에 점점이 떠 있는 하중도(河中島) 중 하나. 올가을에도 이 섬은 황금빛 벼이삭으로 뒤덮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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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래톱 제외한 ‘진짜섬’은 40여개

강의 수량에 따라 섬이 되기도 하고 물에 잠기기도 하는 모래톱까지 포함하면 압록강의 하중도는 205개나 된다. 항상 강 위에 모습을 드러내는 ‘진짜 섬’은 40여개. 가장 큰 섬이 고려 말 이성계(李成桂)가 군사를 돌렸던 위화도이고 두 번째로 큰 섬이 황금평이다. 중국인들은 하중도를 장신다오(江心島)라고 부른다.

북한과 중국은 1962년 맺은 것으로 알려진 조중변계조약(朝中邊界條約)에서 북한이 127개, 중국이 78개의 하중도를 나눠 갖기로 합의했다. 중국에서 발간된 압록강 지도에는 위화도(12.27km²)와 황금평(11.45km²)은 물론 다지도(9.55km²) 구리도(6.6km²) 우적도(4.1km²) 유초도(2.82km²)등 큰 섬들이 모두 북한 땅으로 나타나 있다.

그중 우적도는 퇴적작용으로 아예 중국 쪽에 붙어버려 지금은 사실 섬이라고 할 수도 없고, 황금평도 거의 중국 쪽에 붙어 있다. 그러나 두 섬 모두 북한이 영유권을 가지고 있다.

●‘관광지 위화도’는 북쪽만 볼 수 있다

위화도가 보이는 중국 단둥(丹東)시 강변엔 수십 척의 유람선이 관광객을 기다린다. 그 유람선을 타면 북한의 신의주 앞 50여m 지점까지 바짝 다가간다. 강가에서 머리를 감는 북한 아낙들의 모습도 쉬 볼 수 있다.

취재팀은 모터보트를 타고 위화도에 접근했다. 위화도의 북한 주민들에게 손을 흔들자 그들도 익숙한 일인 듯 자연스럽게 손을 흔들어 답했다. 그래서 섬을 한 바퀴 돌아보려 했지만 보트를 모는 중국인은 기겁을 한다. 위화도 북쪽은 배를 타고 볼 수 있어도 남쪽은 안 된다는 것. 위화도와 북한 본토 사이의 물길로는 배를 몰 수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압록강은 원칙적으로 중국과 조선 두 나라가 공유하지만, 조선 섬과 조선 본토 사이의 물길은 조선의 내하(內河)이므로 그 사이로 배를 몰면 영토 침범이 된다.”

● 월경한 취재팀에 당황한 북한 주민

단둥에서 압록강을 따라 자동차로 1시간쯤 시골길을 달리면 강폭이 20m 이내로 줄어들면서 하이룽(海戎)이라는 작은 마을이 나타난다. 그 앞에 황금평이 보인다. 강물이 빠지는 오전엔 황금평과 대륙의 구분은 사라진다.

“가깝기야 우리 쪽에 더 가깝지. 하지만 저곳에는 오래전부터 조선 사람이 많이 살았어. 그랬으니까 조선 땅이 됐겠지.” 이곳에서 선박회사를 운영하는 한 중국인은 이렇게 말하면서 “건너편 북한 초소의 군인들이 종종 바지를 걷고 강을 건너와 음식이나 옷가지를 얻어 가기도 한다”고 귀띔했다.

취재팀도 북한 초소를 멀리 피해 강 건너 황금평을 밟아 보았다. 강변 제방 위로 자전거를 타고 달리던 북한 주민이 월경한 취재팀을 보자 황급히 초소 쪽으로 향했다. 그래도 취재팀은 여유 있게 중국 땅으로 되돌아올 수 있었다.

● 탈북 막으려고 중국의 섬 개발 말려

취재팀은 단둥으로 돌아와 다시 배를 빌려 압록강 일대의 섬들을 둘러봤다. 취재팀과 동승한 압록강 선박관리담당 중국 공무원은 “조선은 자국 소유의 큰 섬들을 잘 개발했지만 중국은 개발할 만한 섬을 갖고 있지도 않고 개발을 시도한 적도 별로 없다”고 말했다.

다만 위화도에서 바다 쪽으로 3km 정도 내려오면 거의 유일하게 중국이 개발을 시도하고 있는 웨량다오(月亮島)가 있다. 북한이 개발을 반대해 공사가 늦어졌다는 중국 공무원의 얘기가 흥미롭다.

“단둥시가 웨량다오를 개발하려고 한 건 10년 전쯤이다. 이에 조선은 ‘섬이 개발되면 조선 사람들의 탈출이 쉬워지고 경비는 어려워진다’며 개발에 강하게 반대했다. 그 바람에 최근에야 겨우 공사를 시작했다. 조선의 자국 섬 개발에 중국이 반대한 경우는 없다.”

● 강은 공유하나 섬은 공유하지 않아

북한이 영유권을 주장하는 내하를 빼면 압록강은 북한과 중국이 공유하고 있다. 조중변계조약에도 압록강 공유가 명문화돼 있다. 또한 양국이 1961년 맺은 ‘압록강과 두만강의 목재 운송에 관한 의정서’도 압록강 공유를 전제로 하고 있다.

신의주 동북동쪽 80km 지점에 있는 평북 삭주군의 수풍수력발전소가 대표적인 사례. 일제와 그 괴뢰정부였던 만주국의 공동출자로 1943년 말 완공된 수풍댐은 6·25전쟁 때 시설의 70%가량이 파괴됐으나 전후 북한과 중국이 공동으로 댐을 복구해 지금까지 발전소를 공동운영하면서 전기를 나눠 쓰고 있다.

그러나 섬은 다르다. 구리도보다 상류에 있는 고루자섬의 경우 퇴적 작용으로 대륙에 붙어 버렸지만 북한과 중국이 양분해 점유하고 있을 정도로 영유권 구분이 분명하다.

● 북한에 유리하게 정해진 섬 영유권

압록강 하중도의 역사도 순탄치는 않았다. 1895년 청나라 사람들이 황금평에 넘어와 갈대를 베어 가자 조선 관리들이 이를 막으면서 양국간에 신경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렇다면 북한과 중국은 조중변계조약을 맺으면서 어떤 기준으로 하중도를 나눠 가졌을까.

국내 전문가들은 대체로 그 섬들에 누가 오래 살았는지를 기준으로 영유권을 정했을 것으로 추측했다. 17세기부터 실시된 청의 봉금정책으로 압록강 일대의 섬들에 중국인들이 터 잡고 살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어서 농사가 가능한 큰 섬은 자연스레 조선인들의 차지가 됐고, 그래서 북한이 협상 과정에서 선점 효과를 내세웠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압록강 하중도 영유권은 확실히 중국보다 북한에 유리하게 결정됐다. 오랫동안 우리 민족이 그 땅에서 살아 왔기 때문일 것이다. 역사적으로나 현실적으로 우리 땅인 압록강 하중도를 둘러싸고 향후 영토분쟁이 빚어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 한국하천연구소 이형석 소장의 진단이다.

단둥=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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