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보다 일주일 전쯤 서울 인사동 거리에서 역술인의 가방을 훔쳐 달아나다 붙잡힌 콜롬비아인 의류무역상 C씨(47)는 경찰이 스페인어 통역인을 구하지 못해 유치장에서 하룻밤을 보내야 했다.
러시아어나 스페인어 통역을 구하기가 이렇게 힘들다면 소수언어는 사정이 어떨지 대충 짐작할 수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1999년 3012명이던 외국인 범죄 피의자는 지난해 6144명으로 4년 사이 2배 이상으로 늘었다. 그러나 이들과의 의사소통을 담당하는 통역인 사정은 달라진 것이 거의 없다.
통역인을 구한다고 문제가 끝나지 않는다. ‘통역의 질’ 때문이다. 5월 18일 이란인 마약사범에 대한 재판이 열린 서울 서초구 서초동 서울고등법원의 한 법정. 통역인은 선고 내용 중의 ‘미결구금일수’ ‘집행유예’라는 용어의 뜻을 몰랐다.
외국인 전담재판부인 서울고등법원 형사5부 이홍권(李弘權) 부장판사는 “통역인은 해당 언어와 문화뿐 아니라 전문지식도 갖춰야 한다”며 “통역인의 실력이나 경력을 관리할 수 있는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는 일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외국인 범죄 예방을 위한 법률 홍보는 더욱 부실한 상태다.
외국인들이 국내에서 자동차를 운전하고 살 집을 구하는 등 실생활과 관련된 법적인 문제에 부딪히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한국법제연구원(www.klri.re.kr)의 홈페이지를 통해 영문법령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 외국인이 얼마나 될까. 하지만 이마저도 개인의 경우 1년에 26만4000원, 법인은 39만6000원이라는 적지 않은 돈을 내야만 가능한 유료서비스다. 법을 지키는 것은 고사하고 알기도 힘든 현실이다.
전지성기자 vers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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