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유씨는 올해 초 경찰에 두 차례나 붙잡혀 구속영장까지 신청됐으나 풀려난 사실이 19일 밝혀졌다.
이에 대해 “도대체 경찰은 범죄예방과 검거능력이 있느냐”고 비난하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경찰 수사에 대해 유씨조차 “초동수사를 제대로 했더라면 나를 잡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비아냥거렸을 정도다.
▽“두 번이나 잡았다”=유씨는 올해 1월 절도 혐의로 서울 서대문경찰서에서 이틀 동안 조사를 받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19일 서대문경찰서에 따르면 유씨는 1월 21일 서울 신촌의 한 찜질방에서 다른 사람의 옷장 열쇠를 훔쳐 10만원 상당의 금품을 훔친 혐의로 체포돼 이틀간 조사를 받았다.
서대문서는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서울서부지검은 “유씨가 훔쳤다는 상품권을 찾을 수 없고 열쇠에도 지문이 없다”며 “체포 시한 내 재조사 후 석방하라”고 지시했다. 경찰은 혐의를 밝혀내지 못해 같은 달 23일 오전 유씨를 석방했다.
이에 대해 서대문서 강인철 형사과장은 “유씨는 불과 몇 만원을 훔친 잡범으로만 추정됐다”며 “연쇄살인 용의자의 추적 근거가 신발자국과 폐쇄회로(CC)TV에 찍힌 뒷모습뿐이어서 유씨를 살인용의자로 지목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고 밝혔다.
또 유씨는 올해 초 비슷한 시점에 출장마사지사 김모씨와 사귀면서 여행을 자주 다니다가 경북 경주시에서 불심검문에 걸려 조사를 받았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경찰은 “당시 경주 지구대가 신원을 조회하는 과정에서 김씨가 유씨의 전과를 알게 돼 이들이 헤어진 계기가 됐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때 경찰은 유씨의 CC TV 사진을 확보하고 있었지만 유씨의 범행 관련성을 파악하지 못했다.
이렇듯 경찰은 4건의 부유층 살해사건이 연쇄적으로 발생했는데도 관할 경찰서별로만 피해자들의 원한관계를 쫓는 데만 수사력을 모았다.
경찰은 지난해 11월 말 이들 사건을 동일범의 소행으로 보고 서울지방경찰청 주재로 대책회의를 열었지만 경찰서간 공조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당시 일선 형사들은 “연쇄살인범은 외국에나 있는 일”이라며 상부의 수사지침에 반발하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늘이 돕지 않았더라면”=하지만 경찰은 전화방 업주의 제보로 유씨를 잡을 수 있었다. 그러나 “22명을 살해했다”는 진술을 받아놓고도 횡설수설하는 유씨의 심리전에 말려들어 그를 놓치는 한심한 실수까지 저질렀다.
특히 경찰은 도망친 유씨가 자신의 집에 들러 옷가지를 챙긴 후 얼마 떨어지지 않은 어머니의 집까지 찾아가 돈을 타갔는데도 그를 붙잡지 못했다. 같은 날 경찰은 영등포역에서 불심검문을 통해 유씨를 다시 한번 붙잡을 수 있었다. 순전히 ‘운’이 좋아 검거한 것이었다.
회사원 윤모씨(31)는 “경찰의 어처구니없는 대응으로 희대의 엽기사건이 미궁에 빠질 뻔 했다”며 “‘천우신조’라고 할 수밖에 없다”고 경찰을 질타했다.
▽‘괴담’은 사실=유씨의 검거로 올 들어 떠돌았던 “서울 강남지역 젊은 여성들이 사라지고 있다”는 ‘강남 괴담’은 ‘실제상황’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주로 강남에서 활동하던 출장마사지사들이 유씨 범행의 주대상이었기 때문.
초등학교 교사 박모씨(48·여·강남구 개포동)는 “강남권 거주자들이 한두번씩은 괴담을 들어봤을 정도인데도 경찰만 귀를 막고 있었던 모양”이라고 꼬집었다.
유씨의 검거로 강남권 미제 살인사건 일부가 해결되긴 했지만 5월 강남구 역삼동에서 발생한 명문대 출신 30대 여회사원 살인사건 등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또 서울 서남부지역에서 불특정다수 여성들이 잇따라 살해되면서 생긴 ‘목요 괴담’ 역시 가라앉지 않고 있다. 회사원 장모씨(29·여)는 “누구나 이런 엽기범죄의 희생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불안하기 짝이 없다”고 말했다.
조이영기자 lycho@donga.com
신수정기자 crystal@donga.com
정세진기자 mint4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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