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일본에 과거사를 묻지 않겠다니

  • 입력 2004년 7월 22일 18시 58분


노무현 대통령이 한일 정상회담에서 자신의 임기 내에 일본에 대해 과거사 문제를 제기하지 않겠다고 밝힌 것은 잘못된 언급이라고 본다.

이번 정상회담에 나온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는 주변국들의 강력한 항의와 반발에 아랑곳 하지 않고 전범(戰犯)들의 위패가 있는 야스쿠니 신사를 계속 참배하고 있다. 일본의 진정한 과거사 반성이 한참 멀었다는 증거이자 피해국인 우리가 적극 대처해야 할 당위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국민의 분노를 외교정책에 반영해야 할 대통령이 과거사 문제를 거론하지 않겠다는 것은 국민정서와 상반된 결정이 아닐 수 없다.

물론 과거사 반성을 놓고 민간 차원의 공감대 형성을 강조한 노 대통령의 접근방식에도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이런 장기적인 해법도 필요하지만 정부가 일본 내부의 역사 왜곡 움직임에 대해 기민하고 전략적으로 대처하는 것이 우선이다.

일본에 대해 문제 제기를 안 하겠다는 것은 정부 스스로 족쇄를 채우는 꼴이며 정부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외면하는 것이다. 이 약속을 지키려면 앞으로 일본의 과거사와 관련된 망언(妄言)이 이어지더라도 정부는 아무 소리 못하고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다.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만 보더라도 최근 역사문제가 역사적 진실 규명의 차원을 떠나 ‘국가간 힘겨루기’로 변질되고 있음이 명확하다. 학술적으로 어느 쪽 주장이 옳은지 밝혀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와 더불어 국가 차원의 대응이 절실하고 시급하다. 정부가 침묵하고 있으면 역사 왜곡을 시인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더구나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는 친일진상규명법을 들고 나와 일제강점기의 크고 작은 친일 협력문제를 파헤치고 응징하겠다는 게 이 정권이다. 정작 원인 제공자이며 가해자인 일본한테는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닫겠다는 것은 논리적 모순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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