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오전 8시반. 의원회관 635호 방문을 씩씩하게 들어선 한나라당 김희정(金姬廷·사진) 의원은 청탁 문제를 화제로 꺼내자 난감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처음 “궁금한 거 있으면 다 물어 보세요”라며 자신감을 보이던 것과는 다소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그는 의정활동 한달여를 회고하면서 닳고 닳은 인사 청탁자들을 젊은 여성의원으로서 물리치기가 가장 힘에 부치더라고 털어놓았다.
김 의원이 배지를 단 뒤 지금까지 직접 받은 인사 청탁만 모두 6건. 보좌진, 부모님이 받은 이런저런 청탁을 모두 합치면 건수가 훨씬 더 많을 거라고 김 의원은 말했다.
“총선에서 도와준 사람의 이름을 대며 사돈의 8촌까지 찾아내 일자리를 부탁하더군요. 당시에는 어떻게 다뤄야 할지 정말 난감했어요. 누구를 통해 어떻게 거절해야 할지 정말 모르겠더라고요.”
김 의원이 청탁에 민감한 것은 지역구 의원이기 때문. 거절할 때마다 “○○가 지역구 관리를 잘못해 떨어졌다” “무 자르듯 거절하면 다음번에 재미없을 거다”는 얘기가 귀에 따갑게 쏟아졌다.
한 청탁자는 김 의원이 청탁을 계속 거절하자 “혹시 초선이고, 나이도 어리고, 여성이라 (청탁이) 잘 안 먹혀서 그러느냐”라고 약을 올리기도 했다. 최연소 여성 의원이라는 자부심이 없었다면 그 역시 마음이 약해졌을지도 모를 만큼 현실의 벽은 높았다.
김 의원이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소문이 나자 청탁자들은 그의 부모님에게로 달려갔다. “제가 청탁에 깐깐하다는 소문이 나자 함께 살고 있는 부모님에게 전화나 편지로 청탁을 많이 하나 봐요.”
그러다 보니 김 의원이 지역구인 부산에 내려가 부모님을 만날 때면 청탁에 휘말리지 않도록 부모님을 단속하는 게 중요한 일 중 하나가 됐다. 김 의원이 따지고 들면 부모님은 “누구 의원 사모님은 이렇게 한다는데…” “다른 의원들은 저렇게 한다는데…”라면서 깐깐한 딸이 오히려 손해나 보지 않을까 하고 태산 같은 걱정을 한다는 것. 그는 부모님까지 온갖 청탁에 시달리는 게 가장 안타깝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도 김 의원은 희망을 잃지 않는 모습이었다. “이런 청탁이 의원 한명이 거절한다고 없어지진 않을 겁니다. 그러나 비록 지역구에서 욕을 먹더라도 저부터 실천해 간다면 17대 국회에서 청탁도 사라지고, 청탁을 한 분들도 나중에는 이해해 주시리라 믿어요.”
박민혁기자 mhpark@donga.com
▼김희정 의원은…▼
17대 최연소 국회의원(33세). 90년 연세대 정치외교학과에 입학한 뒤 정치학 석사 및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94년 대학졸업 후 신한국당 공채 4기로 당과 인연을 맺었다. 현 한나라당 부산시당 대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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