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223>卷四. 흙먼지말아 일으키며

  • 입력 2004년 8월 5일 18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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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박순철
그림 박순철
대쪽을 쪼개듯(8)

옹왕 장함과 그 아우 장평이 이끄는 군사들이 길을 나누어 달아나자 뒤쫓는 한군(漢軍)도 절로 두 갈래로 나뉘었다. 조참과 주발이 이끄는 군사들은 그대로 장평을 뒤쫓아 호치(好치)성을 에워쌌고, 한신은 남은 장졸들과 더불어 장함을 뒤쫓아 동쪽으로 폐구(廢丘)성을 에워쌌다.

하지만 호치와 폐구 모두 옹(雍)나라의 염통과 간 같은 성이었다. 장함과 장평이 적지 않은 군사를 이끌고 들어가 굳게 성문을 닫아걸고 지키기만 하니 쉽게 떨어뜨릴 수가 없었다. 특히 폐구는 옹나라의 도성으로 지난 몇 달 옹왕 장함이 마음먹고 성벽을 높이고 두텁게 한 터라 더욱 그랬다.

“우리가 여기서 이렇게 시일을 끌다가 항왕(項王)의 구원이라도 오게 되는 날이면 낭패가 아니겠소? 그때 성안에서 버티던 장함과 장평이 뛰쳐나오면, 우리는 등과 배로 강한 적을 맞는 꼴이 되어 갈 곳이 없어질 것이오.”

며칠이나 급하게 들이쳐도 호치와 폐구 모두 떨어지지 않자 한왕 유방이 걱정스러운 듯 말했다. 그러나 대장군 한신은 별로 걱정하는 기색이 없었다.

“항왕은 멀리 서초(西楚)에 자리 잡아 이곳의 위급을 아는데도 여러 날이 걸릴 것입니다. 하물며 우리를 물리칠 만한 구원병을 여기까지 보내는 일이겠습니까. 거기다가 관동(關東)에 풀어둔 간세들이 알려온 바에 따르면, 제(齊)나라의 재상 전영(田榮)은 항왕의 분봉(分封)에 크게 불만을 품고 기어이 일을 저질렀다 합니다. 항왕이 제왕(齊王)으로 보낸 전도(田都)와 자신이 제왕으로 세운 전불(田불)을 모두 죽이고 스스로 제왕이 되어 항왕에게 맞선다 하니 항왕의 불같은 성미로 어찌 그냥 두고 보겠습니까? 신(臣)의 생각으로는 항왕이 관중으로 구원을 온다 해도 제나라를 먼저 평정한 다음의 일일 것입니다.”

그렇게 한왕을 안심시켰다. 한왕은 그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는지 여전히 걱정스러운 눈길로 한신을 바라보며 말했다.

“원병(援兵)은 항왕만 낼 수 있는 것도 아니잖소? 삼진(三秦)은 서로가 서로에게 이와 입술 같은 사이니, 가까이 있는 새왕(塞王) 사마흔이나 적왕(翟王) 동예도 구원병을 낼 수가 있소. 입술이 없어지면 이가 시린 법(脣亡齒寒)이라, 그 둘이 힘을 합쳐 크게 구원병을 낸다면 그때는 또 어찌하겠소?”

“사마흔이나 동예는 그 사람됨이 둘 다 왕 노릇 하기에는 지나치게 살핌과 헤아림이 많습니다. 살핌과 헤아림이 지나치면 의혹과 망설임도 많아 결단이 더딘 법이니, 아직 평온한 제 땅을 두고 선뜻 옹왕 장함에게 원병을 보내기 어려울 것입니다. 오히려 지키기에만 급급해 제 땅에 웅크리고 있다가 우리 대군이 성문 앞에 이르러야만 맞으러 나설 위인들입니다.”

한신이 그렇게 받았으나 끝까지 한왕의 걱정을 몰라주지는 않았다. 잠시 말을 끊었다가 밝은 얼굴로 한왕을 마주보며 말했다.

“하나 이대로 대군을 호치, 폐구 두 성에 묶어놓을 수 없다는 대왕의 밝으신 헤아림은 옳습니다. 따로 계책을 세워야 합니다.”

“그게 어떤 계책이요?”

한신에게 이미 계책이 서 있는 듯해 한왕이 바로 물었다. 한신이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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