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로 논술잡기][책의향기]‘논리내공’

  • 입력 2004년 8월 6일 17시 19분


◇논리내공/존 윌슨 지음 윤희원 옮김/224쪽 이제이북스 1만원

논술 준비의 정석은 많이 읽고 써 보는 것이다. 하지만 제대로 읽고 정교하게 써 보는 연습도 그 못지않게 중요하다. 독서량이 많은 학생들도 제시문을 오해해서 엉뚱한 주장을 펴거나 논점에서 벗어난 장광설을 펼치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논리내공’은 권할 만한 책이다. 이 책은 ‘논리 품세’를 익히는 프로그램이라 할 수 있겠다. 태권도를 가르칠 때 사범은 각 동작을 순서대로 잘게 쪼개 놓고 하나하나 자세를 잡아 나간다. ‘논리 내공’도 논리적 사고의 과정을 섬세하게 나누어 놓고 단계별로 문제를 교정해 나가는 식이다.

논리의 핵심 고리는 ‘개념’을 정교하게 다루는 데 있다. 심층 면접에 나올 만한 문제로 예를 들어 보자.

‘21세기에도 진보는 필연적인가?’라는 논제를 어떻게 다루어야 할까? 우선 ‘진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명확히 해야 한다. 과학기술의 발전인지, 윤리의식의 향상인지 등등으로 개념을 명료하게 잡아놓지 않으면 이후의 논쟁은 초점을 잃을 것이다.

‘진보’의 문제가 언제, 어떤 사회적 맥락에서 제시되었는지를 규명하는 작업도 빼놓을 수 없다. 과학만능주의가 팽배했던 19세기와 문명의 그늘을 반성하는 목소리가 높은 현대의 관점이 같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질문을 하는 의도가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것도 중요하다. 진보에 대한 의구심이 없었다면 애초에 이런 물음은 제시되지도 않았을 터이다. 표면 뒤에 숨어 있는 심리 상태까지도 정확하게 읽어내야 정곡을 찌르는 주장을 펼칠 수 있다.

‘논리내공’은 이런 식의 개념 세련화 과정을 통해 논점을 명확하게 하는 훈련을 시킨다. 나아가 ‘실전 겨루기’를 보여주듯, 몇 개 논제에 대해 논리 분석 과정을 보여주고 상세한 해설을 덧붙인다. 이 지난한 과정을 거쳐 마지막 장의 연습문제까지 소화한 독자라면 어느덧 한 단계 높아진 자신의 ‘논리내공’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결코 녹록하지 않다. 학술서 번역에 가까울 만큼 원문에 충실한 문장들은, 오히려 우리말 맥락으로는 부드럽게 다가오지 않는다. 게다가 각 장의 내용도 교과서를 공부할 때처럼 정성을 기울이지 않으면 따라가기 어렵다. 하지만 세상에 쉽게 얻을 수 있는 능력이 어디 있겠는가. 내공은 그냥 쌓이지 않는다. 무더운 여름방학이다. 보람 있게 보내고 싶다면 ‘논리내공’을 화두 삼아 정신 수련에 몰두해 보는 것은 어떨는지.

안광복 중동고 철학교사·학교 도서관 총괄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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