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나 지금이나 대학입시에 대한 부담감은 청소년 시기의 모든 꿈을 짓누르고 있었고, 밤늦게까지 공부하며 책상머리에서 듣던 심야방송 프로그램은 그나마 우리들의 숨통을 터주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내가 고1이던 1973년에 인기 있었던 라디오 심야방송 프로그램들 중 아직도 그 타이틀이 살아있는 문화방송의 ‘별이 빛나는 밤에’와 당시 동양방송의 ‘밤을 잊은 그대에게’, 그리고 지금은 없어진 동아방송의 ‘0시의 다이얼’, 기독교 방송의 ‘꿈과 음악 사이’가 기억난다.
특히 동아방송의 심야시간 프로그램은 막강했었다. 10시 무렵 김세원씨의 ‘밤의 플랫폼’은 인기 프로였다. 폴 모리아 악단의 ‘이사도라’가 시그널 음악이었고 짤막한 에세이와 팝송 한두 곡이 소개되는 10분 정도의 짧은 프로그램이었지만 정서적으로 메마른 사춘기 청소년의 마음을 마냥 촉촉하게 젖게 했던 방송이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0시의 다이얼’. 당시로는 파격적인 노래 ‘그건 너’를 부른 가수 이장희씨가 DJ였다.
콧수염을 기르고 가죽잠바에 오토바이를 타고 다닌다는 그의 존재는 여학생들뿐만 아니라 남학생들의 마음도 흔들어 놓았다.
어느 날 밤 당대 최고의 인기 작가 최인호, 영화감독 이장호, 여배우 안인숙씨를 ‘별들의 고향’ 촬영 현장과 전화로 연결해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들으며 내 가슴은 뛰었었고, 사이먼과 가펑클, 비지스, 비틀스의 노래들을 들으며 하염없이 멍하니 앉아있던 밤도 있었다.
여학생이 보낸 엽서 사연을 들으면서 ○○여고의 방송제가 언제 있는지, ‘문학의 밤’이 언젠지도 알 수 있었으니, 인터넷도 휴대전화도 없던 그 시절 라디오는 유일한 정보 획득 수단이기도 했었다.
당시 가정에는 주로 트랜지스터 라디오가 있었다. 라디오는 작았지만 소형 ‘배터리’로는 몇 시간 듣지 못했기 때문에 라디오 크기의 2, 3배나 되는 대형 배터리를 라디오 뒤에 부착시키고 검은 고무줄로 칭칭 동여맸었다.
지금처럼 깨끗한 음질의 디지털 사운드는 상상도 못했고, 지직거리는 라디오 소리, 더군다나 방송국에서 틀어주던 LP판도 상태가 좋지 않아 음악이 나가는 도중 툭툭 튀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래도 그때의 그 정겨운 아날로그 소리가 그립고, 지금도 가끔 차안에서 그 시절의 팝송이나 포크송을 들으면 아련한 옛 생각에 잠기곤 한다.
●송승환씨는
△1957년생 △아역 배우 데뷔(1965년) △극단 환퍼포먼스 창단(1989년) △PMC프로덕션 대표이사 사장(1996년) △비언어극 ‘난타’ 제작(199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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