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개혁적·전투적 성향만 갖고 노동운동을 해왔지만 이제는 조합원들이 거부합니다. 우리가 바뀌었다기보다는 시대가 변했습니다.”(박삼현·朴三炫 노조 수석부위원장)
현대중공업은 올해로 무(無)분규 10년째다. 무한경쟁의 수레바퀴는 ‘골리앗크레인’ 위의 강성 노조를 노사 상생(相生)의 전도사로 다시 태어나게 했다.
현대중공업이 바뀐 10년 동안 한국도 바뀌었는가. 불행히도 우리의 현주소는 소모적인 ‘개혁 논쟁’과 용도 폐기된 ‘철 지난 이념’에 사로잡혀 있다는 지적이 많다. 정치 경제 사회 등 각 분야의 원로나 전문가들로부터 한국의 미래를 위한 고언(苦言)을 들어보았다.
▽화합 없으면 미래도 없다=이만섭(李萬燮) 전 국회의장은 성공적인 미래를 위한 전제조건으로 국민의 결집된 에너지가 필수적이라고 역설했다. 진보와 보수의 이분법이나 노(老) 장(壯) 청(靑)에 따른 세대별 갈등 대신 통합과 화합의 정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전 의장은 “사람은 평생 주변의 ‘코드’를 맞춰가며 사는 법인데, 코드 안 맞는다고 배척하면 안 된다”며 “간곡히 조언컨대 대통령은 스스로 코드를 맞춰가며 정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과거의 역사를 들추는 건 미래의 발전을 위한 계기로 삼아야지 정쟁(政爭)의 방편이나 도구로 삼아서는 안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국내보다는 해외로 눈을 돌려야 한다는 지적도 많았다.
통일부 장관도 지낸 홍순영(洪淳瑛) 전 외교통상부 장관은 “우물 안 개구리 식 국제관에서 탈피해 글로벌 시대에 맞는 글로벌 외교를 펼쳐야 한다”고 말했다.
홍 전 장관은 특히 여권의 반미(反美) 정서와 관련해 “열린우리당이 4월총선 직후 의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최우선 외교 통상 대상국을 선택하라’고 한 것 자체가 외교를 전혀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문항이었다”고 비판했다.
또 지난달 일부 여야 의원이 미국에 대해 ‘이라크 전쟁을 중단하고 파병을 요구한 것에 대해 공식 사과할 것’을 요구하는 결의안을 국회에 제출한 것도 무지의 소산으로 평가했다.
그는 “한국은 강국도 소국도 아닌 중간국가(middle power)”라며 “국가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외교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시장원리 지켜야 개혁도 가능=시장 지향적인 경제 정책에 대한 주문도 이어졌다.
연세대 정갑영(鄭甲泳·경제학) 정보대학원장은 “정치를 위한 경제가 아닌, 경제를 위한 정치를 해야 한다”며 “정부가 정치적 목적을 위해 경제를 이용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수도 이전과 같은 국가의 운명을 좌우하는 정책마저 정치적 이유로 밀어붙이는 행태는 고쳐야 한다는 것이다.
정 교수는 또 “지난해 발표된 세계은행 보고서에는 경제발전에서 성과를 거둔 나라의 5대 공통점이 제시돼 있는데 한국이 그 가운데 한 가지라도 충족하는지 반성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보고서의 5대 공통점은 △시장 친화적 △정책 일관성 △대외 개방 △임금 상승률을 웃도는 생산성 증가율 △친(親)기업 정서였다.
대기업 정책에 대한 비판도 쏟아졌다.
미국 보스턴컨설팅그룹 이병남(李秉南) 부사장은 “주요 선진국들은 대체로 정부의 경쟁력이 기업보다 높지만 한국은 그 반대”라며 “기업을 먼저 개혁하기보다 정부를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작년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의 평가 결과 주요 선진국들의 정부 경쟁력 순위는 기업 경쟁력 순위를 앞질렀지만 한국은 정부가 25위, 기업은 20위였다.
▽분배 집착하려면 ‘국민소득 2만달러’는 포기하라=부(富)를 인정하는 사회 분위기 형성도 중요한 발전 전략으로 꼽혔다.
세계경영연구원 전성철(全聖喆) 이사장은 “정부와 국민은 1인당국민소득 2만달러를 주장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부자에 대한 적대적인 정책과 심리가 만연해 있다”고 지적했다.
전 이사장은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 문제를 예로 들며 “주택 공급을 늘려 가격을 떨어뜨리기보다는 기업들이 돈을 벌지 못하게 하는 편법을 선택했다”며 “사회적 ‘파이’를 키우려면 부자들에게 돈을 벌수 있는 자유를 줘야 한다”고 역설했다.
노사관계의 법과 원칙도 강조됐다.
중앙대 김대모(金大模·경제학·전 한국노동연구원장) 교수는 한국의 노사관계는 △노조가 사용자보다 힘이 센 노사(勞使) 불균형 △대기업 노조의 이익을 위해 중소기업 노조가 희생하는 ‘노노(勞勞) 불균형’ △대기업이 노조의 임금인상을 중소기업에 전가하는 ‘사사(社社) 불균형’을 초래한다고 진단했다.
김 교수는 “정부가 ‘노사 자율’을 강조하지만 대기업 노조가 회사를 쥐고 흔드는 판에 자율이 가능한가”라며 “필요하다면 법을 고쳐서라도 공정한 노사관계가 형성되도록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특별취재팀▼
▽팀 장=권순활 경제부 차장
▽경제부=공종식 박중현 송진흡
신치영 하임숙 고기정
차지완 박 용기자
▽정치부=윤종구기자
▽사회부=이종훈기자
▽문화부=이승재기자
구독
구독
구독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