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辛의장 부친 친일행적 파문]“辛의장 부친이 직접 고문”

  • 입력 2004년 8월 17일 18시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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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맺힌 증언1944년 항일 활동을 벌이다 체포돼 열린우리당 신기남 의장의 부친 신상묵씨로부터 고문을 당했다고 폭로한 차익환씨(왼쪽)와 김장룡씨가 17일 각각 본보 기자에게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박주일기자·최재호기자
한맺힌 증언
1944년 항일 활동을 벌이다 체포돼 열린우리당 신기남 의장의 부친 신상묵씨로부터 고문을 당했다고 폭로한 차익환씨(왼쪽)와 김장룡씨가 17일 각각 본보 기자에게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박주일기자·최재호기자
열린우리당 신기남(辛基南) 의장의 부친 신상묵(辛相默)씨가 일제강점기 일본군 헌병으로 복무한 사실이 밝혀져 파문이 일고 있는 가운데, 항일 독립운동을 하다 붙잡혀 신씨로부터 모진 고문을 당했다는 증언이 잇따르고 있다.

1944년 4월 경남 진해의 일본군 제51해군 항공창에서 태업 등 항일활동을 벌이다 체포됐던 차익환(車益煥·79·경기 고양시)씨는 17일 본보 기자와 만나 “1944년 7월 진해 헌병대에서 시게미쓰 구니오라는 이름의 한국인 헌병대 군조(軍曹)로부터 취조를 받았으며, 그 과정에서 혹독한 고문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차씨와 같은 곳에서 군속으로 일했던 김장룡(金章龍·78·부산 순천의원 원장)씨도 이날 본보 기자에게 “차씨와 함께 만세운동을 벌인 혐의로 체포돼 진해 헌병대에서 시게미쓰 구니오라는 대구사범 출신 한국인 헌병에게서 조사를 받으며 모진 고문을 당했다”고 말했다.

일제강점기 호적자료에 따르면 신상묵씨는 ‘시게미쓰 구니오(重光國雄)’로 창씨개명한 것으로 확인됐다.

부산=조용휘기자 silent@donga.com

고양=이동영기자 argus@donga.com

▼차익환씨 “모진 고문에 다리 잘못써”▼

“저를 취조한 것은 잘생기고 다부진 자세의 일본군 헌병 시게미쓰 구니오였습니다. 그는 저를 취조하면서 거꾸로 매달아 코에 물을 부었으며 각목으로 마구 때렸습니다.”

일제강점기에 항일 독립운동을 하다 헌병대에 붙잡혀 고문을 당했다는 차익환씨. 차씨는 17일 기자가 열린우리당 신기남 의장 부친 신상묵씨의 사진을 보여주자 대뜸 신음소리를 내며 “그래 바로 이 사람이야”라며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사진을 짚은 주름진 손가락이 심하게 떨렸다.

“시게미쓰라는 이름을 평생 기억하며 꼭 찾아내 ‘내게 한 짓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고 싶었습니다.”

차씨는 1944년 4월 경남 진해에 있던 일본 해군 군용기 수리 제조공장인 제51 해군 항공창에 취업했다. 한국인 근로자들의 태업을 유도하고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활동을 벌이며 건국동맹에 보고하던 그는 7월 일본 헌병대(당시엔 육해공군 구분 없었음)에 체포됐다.

그는 “당시 다른 한국인 헌병대원 한 명과 함께 취조와 고문을 한 시게미쓰는 오장의 윗 계급인 군조(軍曹)였고, 명찰을 달고 있었으며 55일여 동안 매일 고문을 했다”고 말했다. 당시 모진 고문의 후유증으로 지금도 왼쪽다리가 불편하다는 차씨는 “시게미쓰는 고문을 하면서도 은근한 회유를 시도했고, 있지도 않은 조직도를 내밀며 사실대로 시인하라고 협박했다”고 말했다.

결국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2년6월을 선고받았던 차씨는 “본적지에 수형사실만 남아 있을 뿐 추가적인 입증 서류가 없다는 이유로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여당 실세와 관련된 일이니 참으라는 주변의 만류도 있었지만 여생이 얼마 남지 않은 나의 항일운동을 인정받고 시게미쓰의 만행을 명확히 알리고 싶었다”고 덧붙였다.고양=이동영기자 argus@donga.com

▼김장룡씨 “우물에 거꾸로 매달기도”▼

“배후를 밝히라고 집요하게 추궁했지. ‘배후가 없다’고 하니까 혹독한 고문을 했어.”

부산 부산진구 범천2동에서 35년째 순천의원을 운영하고 있는 김장룡씨는 17일 “당시 취조를 담당한 일본 헌병 군조 시게미쓰가 한 달 넘게 조사하면서 우물에 거꾸로 매달고, 목도로 두들겨 패고, 옷을 벗긴 채 뾰족한 돌밭에 하루 종일 꿇어앉아 있게 했다”고 증언했다. 한마디로 동물 취급을 받았다는 것.

1943년 부산제2공립상업학교(현 부산상고)를 졸업한 김 원장은 해군 제51항공창에 취직했다.

이곳에서 입창 동기인 차익환씨가 독립만세운동을 위한 조직을 만들자고 제의해 안동현씨(사망)와 함께 비밀결사대를 조직했다. 이들은 하숙집에서 함께 생활하면서 한국인 근로자들을 상대로 조직 활동을 했다.

그러다 일본 헌병대원이 항공창에 들이닥쳐 차씨 등과 함께 체포됐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항공창에 위장취업한 후 비밀결사대에 가입한 일본 헌병 오장인 이희정(李熙晶)이라는 조선인이 밀고했던 것.

김씨는 “당시 조사관 시게미쓰가 ‘나는 한국인이다. 대구사범학교를 나왔다’고 해 한국 사람인 줄로만 알았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 사람이 왜 이런 일을 하느냐고 따지니까 ‘나는 너희들과 다른 방식으로 나라를 생각한다’고 말하더라”고 회고했다.

같은 해 12월 군법회의에 차씨와 함께 회부된 김씨는 징역 2년을 선고받고 김천형무소에서 복역하다 광복과 동시에 출소했다.

김씨의 본적인 울산 북구청에서 발행한 그의 신원조회서에는 군법회의에서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형을 선고받은 사실이 기록돼 있다. 김씨는 이를 근거로 2002년 5월 정부에 독립유공자로 신청을 했지만 군법회의 판결문 등 관련 자료가 없다는 이유로 지정을 받지 못했다.

부산=조용휘기자 silent@donga.com

▼군조(軍曹)란…▼

신기남 열린우리당 의장의 부친인 신상묵씨가 일본군 ‘군조’ 계급장을 달고 있었다는 주장은 신씨가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을 가능성을 의미한다.

일본군 하사관 계급은 ‘오장(伍長·하사)-군조(중사)-조장(曹長·상사)’의 순이었다.

한국교원대 한용원 교수에 따르면 징병이 아니라 자원입대한 조선인은 약 2만명이었으며 이 중 상당수가 오장 계급으로 입문했다. 그러나 이들 중 진급한 경우는 일본군에서 능력을 인정받은 극소수였다.

신씨는 대구사범학교를 졸업한 학력과 헌병 근무능력 등을 배경으로 군조까지 승진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신주백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원은 “헌병에다 군조계급을 가진 조선인은 매우 드물었다”고 말했다. 한 교수는 “헌병들에게는 일본군 순사(경찰)조차 꼼짝 못했으며 조선인 사회에서는 거의 신적인 존재였다”고 덧붙였다.

정원수기자 needjung@donga.com

●신기남 의장, 사퇴 결심 굳힌듯●

열린우리당 신기남(辛基南) 의장이 부친의 일제강점기 헌병 복무 사실과 관련해 의장직 조기사퇴 결심을 굳힌 것으로 알려졌다.

신 의장은 이르면 18일 기자회견을 갖고 의장직 사퇴를 공식 발표할 예정이다. 그러나 사퇴에 앞서 당내 의견수렴 과정을 거친다는 방침이어서 경우에 따라서는 사퇴 시기가 좀 더 늦춰질 가능성도 있다. 이에 앞서 신 의장은 18일로 예정됐던 대구 방문 등 모든 공식 일정을 취소했다.

신 의장은 17일 오전까지만 해도 “가볍게 처신할 일이 아니다”며 당 일각의 조기 사퇴 요구를 일축했으나 부친의 일본군 헌병 복무 당시 친일 활동에 대한 피해자들의 증언이 구체적으로 나오자 사퇴를 최종 결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 의장은 사퇴 결심에 앞서 이날 오후 청와대 및 당내 핵심 인사들과 대책을 협의했다.

신 의장이 의장직 사퇴를 결심함에 따라 열린우리당은 20일로 예정된 중앙위원회의에서 향후 지도부 구성 문제를 논의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당의 한 핵심 당직자는 “신 의장이 사퇴할 경우 1월 전당대회에서 선출된 상임위원 5명중 3명이 사퇴하게 된다”며 “전당대회 개최가 현 상황에서 어려운 만큼 비상대책위를 구성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열린우리당 일부 중진과 소장파 의원들은 신 의장의 즉각적인 사퇴를 촉구했다. 안영근(安泳根) 의원은 “부친이 그 같은 경력이 있다면 신 의장이 당의 대표를 맡으면 안 된다”라며 “일제강점기 때 헌병 오장을 지냈고 광복 후에도 경찰을 한 것은 친일 행위의 대명사인 만큼 당의 정체성과 정통성의 문제”라고 주장했다.

안 의원은 특히 “신 의장이 거짓말을 했다는 것이 문제”라며 신 의장의 사퇴와 조기 전당대회 개최를 촉구했다. 한편 열린우리당은 17일 친일진상규명법 개정안의 필수적 조사대상(당연범) 범주를 군대의 경우 소위에서 오장(하사), 경찰의 경우 경시에서 순사까지로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윤영찬기자 yyc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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