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문의 본질은 신 의장의 ‘거짓말’=여권 내에서 신 의장의 사퇴를 강력히 주장하는 의원들은 신 의장이 부친의 친일 행적을 알고 있었을 개연성이 높은데도 한사코 이를 부인해온 ‘이중적 행태’에 크게 반발하고 있다.
이 때문에 청와대와 여당이 주창하는 과거청산 규명작업이 오히려 빛이 바랠 가능성이 크다는 논리다.
신 의장은 지난달 15일 열린우리당 의원총회에서 부친의 친일 의혹을 보도한 일부 언론을 겨냥해 “선친에 대해 일경 간부를 지냈다느니, 친일파라느니, 그런 아버지를 둔 사람이 어떻게 당 의장을 할 수 있느냐고 보도한 것은 명예훼손, 허위 사실에 해당한다”고 당당하게 밝혔다.
그러나 그는 부친의 친일 행적에 관한 시사월간지 ‘신동아’ 보도가 알려진 직후인 16일 기자간담회를 자청해 보도내용을 모두 시인했다. 그가 만일 부친의 과거 행적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면 이처럼 신속히 시인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이에 앞서 신동아 기자는 신 의장측에 여러 차례 확인 요청을 했음에도 확인해주지 않았다. 신 의장측에서 고의로 회피했다는 의혹을 떨치기 어려운 대목이다.
또 신 의장이 18일 광복회를 찾아 부친의 친일 행위에 대해 사과와 용서를 구한 것도 ‘이벤트’성이 아니냐는 지적이 많다. 그에 앞서 자신이 거짓말을 한 것에 대해 국민에게 사과해야 했다는 얘기다.
허영(許營·법학) 명지대 교수는 “아버지의 친일 때문에 아들이 물러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지만 신 의장은 거짓말을 했기 때문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본질 흐리는 여야 공세=열린우리당은 ‘연좌제는 안 된다’면서 이번 파문을 연좌제에 연결시켜 사태의 본질을 호도하려는 태도를 보였다.
열린우리당 내에서는 “과거사 진상규명은 친일 행적을 한 사람들을 기록으로 남기자는 것이지 이들을 처벌하거나 더욱이 후손들의 사회 활동에 타격을 주겠다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며 신 의장을 감싸는 듯한 발언이 잇따랐다.
한나라당은 신 의장이 사퇴할 경우 청와대와 여당의 과거사 진상규명 압박이 더욱 거세질 것을 우려해 명확한 입장을 정리하지 못하고 오락가락한 것도 ‘정략적인 행동’이라는 비판을 면키 어려울 듯하다.
이와 관련해 한상진(韓相震·사회학) 서울대 교수는 “정당 대표로 자신과 연관된 과거사 문제에 대해 알고 있던 사실을 제대로 밝히지 않은 것은 정치적인 도덕성 측면에서 질타를 받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강원택(康元澤·정치학) 숭실대 교수는 “시간이 흐른 상태에서 과거사 규명을 한다면 연좌제적인 성격을 가질 수밖에 없는데, 그렇게 따지자면 자유롭지 않은 사람이 많다”며 “따라서 이 문제는 정치권보다는 학계나 시민단체에서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기사 취재에는 본보 대학생 인턴기자인 고서연씨(서울대 외교학과 4년)도 참여했습니다.
최영해기자 yhchoi6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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