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236>卷四. 흙먼지말아 일으키며

  • 입력 2004년 8월 20일 19시 17분


그림 박순철
그림 박순철
彭城에 깃드는 어둠(3)

“그럼 아부께서는 이번에 무관을 넘은 한군이 얼마며 무얼 하러 그렇게 몰래 무관을 넘었는지 아시오?”

“실은 이 늙은 것도 오늘 아침에야 들어 짐작하게 되었습니다. 남양(南陽) 쪽에 나가 있는 우리 장수 하나가 아침 일찍 알려오기를, 한왕 유방이 설구(薛歐)와 왕흡(王吸)이란 장수에게 군사 500명을 주어 남양에 머무르고 있는 왕릉(王陵)을 찾아보게 했다고 합니다. 짐작으로는 설구와 왕흡이 이끈 군사들이 바로 정창(鄭昌)이 쫓다 놓쳐버린 군사들 같습니다.”

둘러하는 말을 싫어하는 패왕의 성품을 잘 아는 범증이 바로 그렇게 알려주었다. 패왕이 별 내색 없이 다시 물었다.

“왕릉이라-어디서 많이 들은 이름인데. 아부께서는 왕릉이란 자를 모르시오?”

“그것도 좀 알아둔 바 있습니다. 왕릉은 풍읍(豊邑) 사람으로 한왕 유방과 고향이 같습니다. 젊은 시절 건달로 저잣거리를 떠돌 때에는 왕릉이 오히려 유방의 형 노릇을 한 적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뒷날 유방이 패현의 저잣거리를 휘어잡은 뒤에는 그 밑에 들기를 마다하고 따로 패거리를 지어 겉돌았다는 것입니다. 유방과 왕릉의 그 같은 연분은 진왕(陳王=진승)이 진나라의 천하를 뒤엎은 뒤에도 되풀이되었다고 합니다. 왕릉이 먼저 몸을 일으켜 무리 만여명을 모았으나, 겨우 몇 천의 무리로 우리 무신군(武信君=항량) 밑에 든 유방에게 또 밀리게 된 것입니다. 곧 유방은 회왕(懷王)의 명을 받고 관중으로 들게 됨에 따라 단번에 대왕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잠깐 동안에 군세를 크게 부풀릴 수 있었으나, 왕릉은 무리와 더불어 남양에서 홀로 자립한 바람에 세력을 크게 떨치지 못한 탓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때도 왕릉은 비록 유방의 엄청난 세력에 눌려 다시 그 밑에 들게는 되어도 유방을 따라 나서지는 않았습니다. 그 때문에 관중에 들어가 세운 공이 없어, 만만찮은 세력을 이끌고 있으면서도 땅 한 조각 차지하지 못한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패왕도 고개를 기웃거리며 기억을 더듬다가 아무래도 알 수 없다는 듯 물었다.

“그러고 보니 나도 몇 가지는 들은 듯하오. 그런데 유방이 이제 와서 많지도 않은 군사를 그리 어렵게 무관을 넘게 해 왕릉에게 보낸 까닭이 무엇일 것 같소?”

“이 늙은 것이 곰곰 헤아려보니 아무래도 유방이 크게 일을 저지르려는 듯합니다. 파촉 한중에서 삼진(三秦)으로 나와 기름지면서도 지키기 좋은 관중 땅을 근거로 삼고 대왕께 정면으로 맞서볼 심산임에 틀림없습니다.”

“나와 맞서는 것과 왕릉에게 몰래 사람을 보내는 일이 무슨 상관이 있소?”

“왕릉이 세력을 펼치고 있는 남양은 관중과 유방의 고향 풍읍 사이에 있습니다. 유방은 아마도 이번에 왕릉을 달래 풍읍에 있는 부모와 처자를 데려가려는 듯합니다, 그들을 그대로 풍읍에 둔 채 대왕께 맞서는 것은 그들을 대왕께 볼모로 바치는 것이나 다름이 없지 않겠습니까?”

그제야 모든 걸 알아차린 패왕이 갑자기 급해진 목소리로 범증에게 매달렸다.

“남양이나 풍읍이나 모두 과인이 다스리는 땅이거나 과인이 세운 제후의 땅이오. 그런데도 유방이 거기서 보란 듯이 제 가솔들을 빼내 간다면 세상 사람들이 얼마나 나를 비웃겠소? 어서 군사를 풀어 길을 막고 유방의 장수들과 왕릉을 잡아들여야 하지 않겠소?”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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