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진의 영화파일]‘진주귀걸이를 한… ’의 스칼렛 조핸슨

  • 입력 2004년 8월 26일 17시 1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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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진주귀걸이를 한 소녀’에서 베르메르 역의 콜린 퍼스(오른쪽)와 소녀 역을 맡은 스칼렛 조핸슨. -사진제공 프리비전
영화 ‘진주귀걸이를 한 소녀’에서 베르메르 역의 콜린 퍼스(오른쪽)와 소녀 역을 맡은 스칼렛 조핸슨. -사진제공 프리비전
스칼렛 조핸슨을 보고 있으면 연기와 나이는 때로 반비례한다는 생각이 든다.

보통 연기란 것은 인생의 경륜이 좀 쌓여야 ‘진짜’가 나온다고들 한다. 그 말은 맞다. 하지만 배우들은 나이를 먹으면서 진짜 연기를 얻는 대신 관능을 잃는다. 그런 면에서 보면 그는 천부적이라는 느낌을 준다. 관능이 넘쳐나는 나이에 삶에 대한 통찰과 혜안을 표현할 줄 아는, 보기 드문 젊은 배우이기 때문이다. 이제 갓 스물이 넘었다. 1984년 뉴욕 태생이다.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의 첫 장면을 기억하시는지? 한 여인이 관객을 향해 등을 보이고 누워 있다. 엷은 핑크빛 팬티로 가려진 여인의 탐스러운 엉덩이가 시선을 자극한다. 매우 육감적이지만 이상하게도 쓸쓸하고 외롭다는 느낌을 준다. 이 여인은 무엇을 기다리는 것일까, 혹은 울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참을 수 없는 욕망에 몸을 떨고 있는 것일까.

‘사랑도…’의 이 장면 하나만으로도 요즘 사람들이 얼마나 소통 부재의 질병으로 고통 받으며 살아가고 있는지가 드러난다. 조핸슨 역시 이 신만으로 자신이 얼마나 잠재력을 갖고 있는 배우인가를 보여줬다.

베르메르의 그림 ‘진주귀걸이를 한 소녀’를 극중에서 그대로 재현해 내는 스칼렛 조핸슨. 이 그림 속 소녀는 미술계에서 ‘북구의 모나리자’로 불린다.

영화 ‘진주귀걸이를 한 소녀’에서 조핸슨이 여주인공 그리트 역을 맡은 것은 어찌 보면 피터 웨버 감독의 절묘한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17세기의 숨 막히는 계급사회에서 여인의 억눌린 욕망을, 감춘 듯 드러나게 하는 데 그만큼 적당한 배우가 없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미국 작가 트레이시 슈발리에의 원작소설 ‘진주귀걸이 소녀’를 영화로 만든 것이다. 소설은 1999년 미국에서 출간돼 선풍적 인기를 모으며 베스트셀러가 됐다.

영화와 같은 제목의 그림 ‘진주귀걸이를 한 소녀’는 네덜란드 화가 얀 베르메르가 남긴 걸작. 소설 출간을 전후해 미국에서는 서양 회화의 마지막 미지의 화가의 한 사람인 베르메르 열풍이 불었으며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서 열린 그의 전시회는 폭발적 인기를 끌었다. 영화 ‘진주귀걸이…’에는 푸른 수건을 머리에 두른 소녀가 한쪽 귀에 진주귀걸이를 하고 캔버스 바깥쪽 어딘가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표정이 담겨 있다. 그 단순하고 정적인 느낌 때문인지 이 작품은 현재 ‘북구의 모나리자’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소설과 영화는 베르메르가 이 그림을 그리게 된 배경, 하녀 그리트와 있었을 법한 멜로드라마를 좇아간다.

하지만 경고하건대 영화에서 격렬하면서도 자극적인 로맨스는 기대하지 않는 게 좋다. 때는 1665년. 네덜란드 항구 도시 델프트에 사는 저명 화가 베르메르의 집에 한 소녀가 하녀로 들어가게 되고, 그 소녀는 주인님의 그림에 반하게 되고, 그 주인님 화가는 소녀의 순수한 아름다움에 끌려 그녀를 모델로 삼게 되고, 이에 질투심에 불탄 마나님 때문에 소녀는 결국 쫓겨나게 된다는 얘기다. 주인과 하녀간에 이루어지는 짧은 교감, 표현하지 못하는 사랑, 그리고 헤어짐이 소설과 영화에서 일어나는 사건의 전부다. 겉으로는 아무런 사건도 일어나지 않지만 그 아래서 요동치는 감정의 물결, 곧 사랑, 질투, 희생 등이 엄청난 밀도로 그려진다.

요정 같은 배우 조핸슨은 이번 영화에서도 철저하게 내면의 연기력을 과시한다.

조핸슨은 그동안 ‘호스 위스퍼러’ ‘판타스틱 소녀백서’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 등을 통해 “이 시대의 롤리타”라는 평을 들었지만 거의 동시에 제작된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와 ‘진주귀걸이를 한 소녀’로 이제 세계 영화 팬들의 ‘여인’으로 자리 잡게 됐다. 9월 3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 가.

오동진 영화평론가 ohdjin@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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